#68 대나무와 쓸모
“뭘 그걸 키워요? 쓸모도 없는걸” 지나가던 할아버지께서 말을 툭 던지고 지나가십니다. 대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제가 안쓰럽게 보였나 봐요. 할아버지 눈에는 그 쪼그만 땅에 대나무처럼 쓸모없는 걸 심어서 헛수고를 하나 싶었나 봅니다.
몇 년 전 이사 와서 집으로 들어오는 문 옆 자투리 땅에 무엇을 심을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지요. 언젠가 담양의 대나무 숲을 보고 와서 나도 기회가 되면 대나무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이사 온 다음 해에 바로 대나무를 심었습니다. 다섯 그루 달랑 심었더니 다소 허전하더군요. 더 빼곡히 심을 걸 그랬나 싶었는데, 대나무는 매해 죽순이 올라온다고 하니 그걸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대나무를 심은 해부터 5월 봄비가 오고 나면 어느새 죽순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매년 올라온 죽순이 자라 이제 제법 대나무들이 제법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세 개의 죽순이 올라오고 있네요. 그 쪼가리 땅에 이 꽃 저 꽃도 심어보고, 작년에는 옥수수도 심어봤지만, 역시 가장 잘한 것은 대나무를 심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대나무가 누구 눈에는 쓸모가 없어 보이겠지요. 대나무로 죽공예를 할 것도 아니라면 대나무는 그저 작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쓸모없는 식물에 불과하지요. 쓸 데가 없으니 대나무가 쓸모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쓸모는 쓸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사용할 가치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여길 겁니다. 대나무 죽공예 하는 이에게 대나무는 죽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 생각할 것이고, 대나무 숲의 시원함을 느끼는 이에게는 대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주는 용도로 여길 터이지요. 저에게는 그저 사시사철 푸르게 자라는 대나무, 그리고 오월이면 죽순 올라오는 재미를 보는 자체로 의미가 있지요.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고 지구의 온도가 낮아져 빙하기가 오는 상황을 그립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꼼짝 못 하게 되자, 뉴욕 공립 도서관에 모인 사람은 추위를 피하려고 책을 땔감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책을 누구보다 아꼈던 사서는 그 귀한 책들이 불태워지는 것에 화들짝 놀라지만, 추위를 피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책은 그저 땔감으로 이용되지요.
책은 누군가에게 귀한 가르침과 역사를 담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폐휴지로, 누군가에게는 낮잠 자는 데 베개로 이용됩니다.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난방용 땔감으로 쓰이게 되지요. 책도 이렇게 쓸모가 다 다르게 이용되는군요.
책뿐이 아니지요. 시는 어떤가요. ‘시가 정말 쓸모없는 거라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박완서의 단편소설 <시인의 꿈>에 나오는 글귀이지요. 소설은 시인이 사라진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시인이 없어진 이유를 소년이 묻자 노인은 대답합니다.
"곤충을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의 두 패로 나누듯이 그때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도 두 가지로 나누었단다.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일과 쓸모없는 일로....." (...)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을 금지시켰단다. 그래서 대개의 시인들은 기술자가 됐지. 그래도 끝까지 시를 안 버리려고 한 시인에겐 쓸모 있는 시를 쓰란 명령이 내렸고”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렇게 구분해서 쓸모없는 것은 구박하고 버리기도 하지요. 저는 쓸모 있는 인간일까요. 요새 많이 아파서 손이 많이 가는 우리 집 강아지는 쓸모 있는 존재일까요. 엄마에게 아가는 아가가 쓸모가 있는 존재라 사랑으로 키우는 걸까요.
꽃과 벌레와 새들은 쓸모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하늘은 쓸모가 어디에 있고, 바람은 쓸모가 있을까요. 누군가에는 바람은 성가신 것이지만, 돛을 올려 바다를 나선 이에게 바람은 바다를 건너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누군가에 비는 옷을 적시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불편한 것이지만, 비를 기다렸던 농부에게 비는 단 꿀보다 더 귀한 존재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쓸모는 누군가에게는 없고 누군가에게는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것이 누군가에는 쓸모가 없는 것일 수 있지요.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저 그 누군가의 잣대로 판단할 뿐이지요.
올해도 대나무는 죽순을 귀하게 올려줍니다. 오월의 햇살과 비를 맞으면서 며칠이 지나면 죽순은 제 키의 두 배가 넘는 대나무가 되어 있겠지요. 그 대나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저의 낙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도 아니 정말 쓸 데가 없더라도 존재하는 자체가 대나무가 있는 이유일 수도 있지요. 그리 쓸모없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