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상수리나무와 쓸모

by 이상현

#69 상수리나무와 쓸모


지난번에 대나무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나무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아니 제가 나무에 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장자의 이야기를 빌려오지요.


<장자>에는 ‘장석과 사당 나무’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석(石)이라는 목수가 사당의 상수리나무라는 매우 큰 나무를 보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 버리지요. 제자가 그 이유를 묻자, 석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쓸모가 없는 나무야.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짜면 곧 썩고, 그릇을 만들면 쉬 부서지고, 문을 짜면 수액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어 세우면 좀이 슬 것이니, 재목이 못 돼. 아무짝에도 못 써. 그러니까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거야.”


목수 석의 안목은 역시 남달랐습니다. <장자>에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났으면 목수 석이 주인공이겠지요. 하지만 장자는 목수의 꿈에 나타난 사당 상수리나무의 말을 이어갑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쓸모없기를 바랐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완전히 그리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일세. 내가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클 수 있었겠는가? 또, 그대나 나나 하찮은 사물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그대는 상대방만을 하찮다고 한단 말인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 운운한단 말인가?”


상수리나무의 일갈에 목수는 뻘쭘했겠지요. 상수리나무가 너무 커도 쓸모가 없고, 너무 작아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는 장인으로서 목수의 기준이 있었겠지만, 그 쓸모는 목수의 기준이지 상수리나무의 기준이 아닙니다. 상수리나무가 크면 큰 그늘을 주고, 상수리나무가 너무 작으면 커나가는 변화를 보는 기쁨을 줄 수도 있지요.


쓸모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목적에 충실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그것을 대한다는 장자의 일갈이 담겨있지요.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도 모르는데 어찌 내 주위 그것들을 쓸모 있고 없고 따지겠습니까.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셨지요. 세상에는 꼭 사용할 용도가 있어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사용할 용도는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지만, 사용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존재 이유일 수도 있겠지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는 이경애 어린이의 ‘메주’라는 시가 소개됩니다.


시골집 선반 위에

메주가 달렸다.

메주는 간장, 된장이 되려고

몸에 곰팡이가

피어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 사람들은

메주의 고마움도 모르고

못난 사람들만 보면

메주라고 한다.


메주의 쓸모를 아는 사람에게 메주는 오랜 시간 기다림을 함께 하는 귀함이고 메주의 쓸모를 모르는 사람에게 메주는 냄새나고 못난 덩어리일 뿐이지요.


쓰다 보니 다른 이의 글만 그대로 전합니다. 그렇게 전하는 것이 제 글보다 쓸모가 있겠지요. 쓸모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쓸모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언제나 쓸모 있음과 없음을 넘어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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