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민(銳敏)

by 이상훈

감정이 예민한 사람이다. 타인의 표현력을 한 없이 분석하고 대응 방식을 찾는다. 얼굴색 하나하나와 말씨와 숨소리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나의 말에 상대방이 얼마나 변화를 갖는지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정작 본인의 표현력은 어떠한가? 타인의 감성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고스란히 전부를 받아 주기를 원한다. 불편한 표현력일 수도 있는데 상대를 나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와 상대가 대칭 지점 혹은 반비례적 관계에 있지는 않은가. 물론 말이라는 것이 상대성이 있기도 하지만 표현은 화자의 습관 지혜의 깊이를 함께 내포하기에 절대적으로 비례관계에 있지는 않다.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다르다.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대방의 표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 자신이 그러하듯 상대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표현 양식과 다양하지 못한 얼굴 표정에서 기인한 경우가 간혹 오해를 부르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이는 어릴 적 습관이 몸에 밴 것에 기인한 것 같다. 우리의 어린 시절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양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대단히 엄격하신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늘 부모님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다. 또 부모님들 역시 일상에 지쳐 있었기에 사소한 일에도 불 같이 화를 내는 것이 다반사였다. 무슨 일 하나라도 하고 나면 일에 대한 평가가 끝날 때까지 매우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불안과 상대의 안색을 살피는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 습관화된 것이 분명하다. 이야기를 대단히 활달하면서 꾸밈없이 적당한 유머를 섞어서 하지 못하는 것도 자기의 주장을 화부터 내면서 알아달라고 조르는 것도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많은 형제들 중에 자기의 주장을 조금이나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테니까 말이다. 실상 어른이 되어 보니 주장은 부드럽게 상대의 기분을 보아가며 하는 것이 최고이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고 효과적으로 자기의 주장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상대의 표현에 일일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도 어찌 보면 감정 낭비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남을 챙길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 되다 보니 타인이 뱉은 서운한 표현을 감싸 안아주고 들어주는 역할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노동절 날에 말이다.

딸아이가 대성통곡을 한다. 딸의 외로움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봤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의 발산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딸아이에게 충고라고는 할 것 까지는 없으나 맘껏 울어보라고 이야기했다. 또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피할 수만도 없으니 그걸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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