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새로운 해석

by 이상훈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해 왔다.

부모와 자식으로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 친구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당시엔 만남에만 익숙해져 있을 수 있다. 모든 게 처음이니 처음 만나는 사람도 헤아릴 수 없게 많게만 느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 만남 속에도 생길 수 있는 게 가벼운 만남과 진중한 만남이겠다. 진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난 것은 아니지만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런 진중한 만남은 헤어짐에 약간의 어색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어쩌면 헤어질 줄 몰랐던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헤어지는 연습이 전혀 없었던 관계로 좀 힘든 헤어짐이었을지 모른다. 성인이 되어 어느 날 문득 시작된 연인 관계나 새로운 이웃의 이사로 생기는 이웃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회 친구 등 이 모든 인연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물론 이런 논의가 전혀 필요가 없는 죽음이라는 전제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관계에서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유통기한이 있는 식품류도 못 먹게 되었을 때 아쉬움을 갖듯이 적어도 그 정도만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담담하게 헤어짐에 대해 접근한다면 그리 볼 성 사나운 일들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직위를 주어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권한이 없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성품이 직위를 가져보면 다양한 판단을 해야겠기에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성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그나마 양반인 게 직위가 주어지기도 전에 직위를 갖기 위해 그동안 친한 이들과 이전투구하고 협잡꾼으로 몰아가고 하는 인간군상들을 보면 굳이 직위까지 갈 필요가 없을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가 종료시점을 맞은 것이다.


사람이 동물이나 상품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주변 상황이 이쯤 되니 뭐 인간이 그렇게 대단하게 우월한 정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맘이다.

당연히 인간이 갖고 있는 품성과 자주성 등이 있기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지만 단순히 유통기한이라는 것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그럴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 하는 추론 정도는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들도 다양한 곳에 진열되기도 하고 다양한 유통경로를 거쳐 참 다양한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며 소임을 다해 간다. 물건의 소임도 알고 보면 금전적 관계에서 발생되기도 하고 친분관계에서 발생되기도 하고 공적인 물건의 경우에는 단순히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소임이 발생하기에 인간의 소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 관계란 무얼까?

젊은 시절 혹은 어린 시절의 관계는 맺어지고 싶어서 맺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우연한 기회에 서로 간의 관심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본다. 특별히 우연을 가장하여 만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성장을 하고 권력을 갖게 된다거나 제한된 영역 밖으로 나가고자 할 때는 목적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하거나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하거나 하는 것 등도 좋은 인맥을 위해서 이기에 인위적인 경우가 많이 생겨난다. 다만 그것이 우연을 가장한 것이라 하더라도 가장한 것이 밖으로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호감은 생겨날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관계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했고, 어렵사리 생겨난 관계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혹은 무관심에 의해 종료됨으로써 어쩌면 인간이 영원한 것에 목말라하는지 이유를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영원한 것은 그래서 가질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관념에만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 일 것 같다.

상처 받기 쉬운 인간의 영혼에는 많은 헤어짐의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