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주고 싶을까요?
저는 부모님과 어린 시절 추억이 거의 없다. 항상 바쁘시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특정한 장소를 함께 놀러 간 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이 나이를 처음 살아보니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몸에 익숙하게 밴 것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인데 경험한 것이 없어서인가. 뭐 대단하고 특별한 것도 없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라고 나에게 물으면 나의 대답은 “글쎄”뿐일 것 같다. 뭐 특출 난 것이 없으니 말이다. 다만 아이의 아빠라는 것은 분명하니 누구의 아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다만 누구의 아빠는 대부분의 세상의 아빠와 다르지 않고 내가 못마땅해했던 나의 아버지를 비롯해 옆집 아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들 누구의 아빠 정도는 되니까 말이다.
학창시잘엔 보통 평범한 것을 낮추어 보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평범한 삶의 가치가 보통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어린 시절 시골학교에서 공부를 조금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주변 친구들을 약간은 내려보는 경향을 보이다가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연령층으로 갈수록 꿈도 작아지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줄어드는 과정을 거친다. 평범해진다는 것인데 알고 보면 어린 시절 약간의 특출남이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어느 이는 어린 시절에 어느 이는 중년에 어느 이는 말년에 특출 나게 될 수 있는 것을 결국은 나이가 들어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면 깨닫게 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국사회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대입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아이의 위대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들은 실화를 한 번 써보자면 몇 해전인가 싶다. 얼핏 어느 학원 밀집 건물 복도를 지나는 길에 아이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웃은 적이 있다. 한 아이는 아마 대학을 다니는 선배인 듯했고, 한 아이는 중고생쯤 되어 보였다. 단체 활동을 함께 하는 사이였는지 중고생 아이가 학원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말했다.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야 이 친구야 누구는 뭐 너 나이 때 학원을 안 다닌 줄 아니 나도 그렇게 학원을 다녔는데 지금 이 꼴이야.”라고 말이다. 아마도 성에 찬 대학이 아닐 수 있고, 열심히 학원을 다녀도 결과물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인 것 같았다.
성장과정을 단순화한다면 결과는 단순하게 정해져 있는데 아이가 원하는 것 혹은 잘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채 아이에 대한 기대만 너무 높고 이를 위해 불필요한 과정들이 너무 많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것을 외면한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부모의 학연과 직업 등 부모의 백이 더 절대적일 수 있다.
나머지는 결국은 보통이 되는데 보통을 설명하기 위해 참 엄청 많이 돌아온 느낌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서로 디른 생각을 하기에 다자간에 조율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단지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한 추억을 써 볼까 했었는데 방향을 어찌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어린 시절 딸아이의 할아버지와 내가 박으로 만든 바구니에 완두콩을 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요일 오후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몇 가지 음식재료를 사면서 완두콩 한 망 태기를 샀다. 그걸 딸아이와 같이 까보고 싶었다. 이게 무슨 딸아이와 추억을 쌓는 일이냐 반문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기억 속의 나는 나의 아버지와 그 일을 한 적이 있다.
추억 속의 나는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버지는 완두콩을 넝쿨을 통째로 꺾어 오셨고, 나에게 마루 옆 토방에 방석을 깔고 앉아 완두 콩깍지를 까도록 했다. 콩 꼬두리에서 콩을 빼내는 일은 손톱 밑에 때가 새까맣게 끼는 것은 둘째치고 오래 하면 할수록 손톱이 빠질 만큼 아프고, 반복적으로 같은 동작을 이어가기에 무료하기도 했었다. 콩꼬투리만을 훑어 바구니에 담아 놓고 콩을 깠었던
그런 좋지 않은 기억이 있으면서도 딸아이에게 “아마 네가 어른이 되면 오늘 아빠와 완두콩 깍지 깐 것을 추억할지도 몰라” 이야기를 하면서도 딸아이와 같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완두 콩깍지에서는 완두콩이 도르르 굴러 나와 마룻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카펫 가장자리에 멈춰 서기도 한다.
딸아이는 얼마를 까다 말고 바닥에 누워 버린다.
“그새를 못 참고 눕는 거야. 예전에 아빠도 참 하기 싫었어 할아버지와 콩까는 것 말이다. 예전엔 남녀가 유별했는데도 아빠에게는 콩까는 것도 집안 청소하는 것도 다 시키셨지. 그래서 아빠가 살림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엄마~~!! 스마트폰만 조금만 보게 해 주세요!
딸아이는 완두콩 까는 데 하나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