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순이 언니

by 이상훈

몇 미터 앞에 어르신이 마스크를 벗고 걸어오시다가 나를 보고 얼른 마스크를 쓰신다. 동네 산책과 같은 느낌으로 야트막한 산이나 한 번 오르시려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마스크를 하고 나왔다가 오르막 길을 만나고 계단을 만나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숨이 거칠어지게 되니 답답한 숨을 고르기 위해 마스크를 벗었는데 내려가는 사람 인기척에 다시 마스크를 쓰신 듯하다. 코로나가 주는 안타까움이고 서로에게 참 못할 짓이다.

코로나 세상에서 이처럼 가벼운 산책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어르신께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치다가 이렇게 산을 올라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숲을 담아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영상은 좋은 데 오디오를 따로 채집하여야 할 것 같아서 새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동하여 조용히 녹음 기능을 켜는데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라디오 소리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몇 분 간격으로 한 무리의 등산객이 지나기를 반복한다.







요즘 어르신들은 산에 오르실 때 너나없이 라디오를 상시 켜놓고 음악을 듣는 듯하다. 이젠 스마트폰 밸 울림과 통화음으로 녹음에 실패했다. 새소리가 반갑게 들려 이동하니 도로가 옆에 있는지 트럭과 버스의 굉음이 밀려 올라온다. 다시 이동하면서 새소리를 찾아 나서는데 그때마다 생활소음이 방해를 한다. 녹음을 하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주변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소음이 난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공기의 흐름 소리가 들리나 할 정도로 세상이 고요하다.


하늘에 떠 가는 구름 소리가 들리는 듯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밀짚으로 만든 자리를 햇살이 비켜나는 집의 서쪽 편 그늘 밑에 펴고 누워 파란 하늘을 여러 모양으로 합쳤다가 퍼져나가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아침 식사 후 햇살이 집안으로 밀려들기 전에만 하더라도 방학숙제를 하느라 대청마루를 뒹굴었는데 어느 사이 대청마루조차 사람이 뿜어낸 열기로 바닥이 뜨근 뜨근해진다.

들녘의 여름 해는 오전 10만 되더라도 한낮의 열기에 버금갈 만큼 이글거린다. 개들도 더위에 지쳐 혀를 길게 뽑아내고 마루 밑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 역시 바람이 조금이라도 일어나는 곳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몇몇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들은 담장 옆 포도 덩굴 밑이나 편백나무 담장 밑에 앉은뱅이 방석을 깔고 앉아 있거나 밀짚으로 만든 자리를 펴고 소꿉장난에 열중인 모습이다. 전 날 해가 진 들판에서 시끌벅적했던 것과는 너무 판이해진 한낮이다.


제트기가 하늘을 지난다. 길게 구름 같은 물방울을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도 들릴 듯이 세상은 조용하다.


밀짚으로 만든 자리에 누워 가만히 땅 밑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땅강아지가 땅을 긁어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한다.

이 친구들은 암수가 짝짓기를 할 때 "비이 비이"소리를 낸다. 땅바닥에 누워 땅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들어 본다는 게 재미나는 일 같기도 하지만 정말 심심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소음에 백색소음이라는 것이 있다. 음역대가 컬러의 흰색처럼 넓게 분포되어 있어 공해에 해당되지 않는 소음인데 파도나 숲의 소리, 계곡의 소리 등이 백색 소음이라고 한다. 이런 소리들은 심리적으로 많은 위안을 준다. 백색소음의 음역대가 넓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소리, 선풍기 소리, 공기청정기 소리도 백색 소음에 들어간다. 이 가운데 라디오나 텔레비전 소리는 고주파가 들어 있어 불쾌함 느낌을 주기도 하고 공기청정기나 선풍기는 저주파이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준다고 한다.


서쪽 그늘에 폈던 밀짚으로 만든 자리를 해가 머리 위에 솟아 서쪽 그늘이 짧아질 때쯤이면 햇볕이 차단되고 그늘이 길어지는 또 한 점의 바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집 북쪽으로 이동시켜 놓는다. 대부분의 집들을 보면 집 북쪽에 굴뚝을 세워놓고 있었다. 또 간식거리를 얻기 위해 집집마다 포도나무나 복숭아나무 등을 심어 나무 그늘도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오후로 넘어가려는 즈음 이웃집 은순이 언니가 동생을 업고 왔다. 동생이 홍역을 앓는 중이어서 매일매일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당시 동네의 처녀들은 대도시 공장에 나가기도 했지만 일부 집에서는 얌전히 집에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 하며 집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스무 살 안팎의 누나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참 많은 부업을 한 것 같다. 모내기 등에도 열심히 나가 품삯을 받아 모았고 겨울이면 가마니를 짜 돈을 모았다는 기억이 있다.

그런 분 중 한 분이 은순이 언니가 아닌가 싶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은순이 언니라고 부르니 누나보다는 은순이 언니가 더 편했다.

착하다고 쓰여 있는 선하고 큰 눈망울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단발머리 아니 바가지 머리를 강요당했던 언니.

옛날 부모님들은 자식은 많고 머리 자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셨는지 머리에 바가지를 씌우고 삐져나온 머리를 가위로 자르셨다.

밀짚 자리에 앉아 라디오를 같이 듣고 감자나 옥수수를 쪄서 나눠 먹기도 하며 그 힘든 고요함을 함께 이겨냈는데 이젠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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