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어죽

by 이상훈

내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점방이나 송방이란 말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다녔던 학교 앞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마을 중심에 있어서 어른들의 놀이방이 되었던 곳이다. 점방이나 송방 앞에는 모두 똘(수로)이 지났다. 평야지대인 우리 마을은 시냇물 길이 없다. 냇물이란 개념도 없었다. 그 당시로 써도 식수용 물의 질은 정말 최악이었다. 마을 사람 모두 식수용 샘을 집 인근에 만들어 놓고 거기에 농업용 물을 가두어 식수로 사용했다. 이 물이 아무래도 식용으로 적합하지 못할 것이란 그 당시 어른들도 수질이 나쁘다는 걸 알았는지 농사용 물을 음료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집집마다 초대형 항아리를 사다 놓고 있었다. 이 항아리는 샘에서 길어온 물을 장시간에 걸쳐 안정화시켜 좀 더 맑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읍내 사람들 더 나가 개울물을 가지고 있는 산골 투성이 아이들 조차 비웃을 정도였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농사를 위해 지나는 물길일 뿐이었고 그 물길에 흐르는 물 또한 농사를 지을 때만 흐르는 물이거나 비가 내릴 때만 흐르는 물이었다.




때문에 똘이라 불렸던 농수로는 하수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시골에서 허드렛물을 버리거나 각종 쓰레기가 버려지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런 시골이었음에도 겨울철이면 가끔 물이 고인 곳에서는 얼음을 깨고 마을 청년들이 물고기를 잡는 일이 벌어졌다. 농수로 양쪽에 둑을 만들고 담겨 있던 물을 펌프로 퍼내면 진갈색으로 진흙바닥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보이고 순간순간 은색 빛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여름철에도 당연히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전기를 사용하기도 해서 많은 홍보물들 그러니까 전기로 물고기를 잡지 말라는 계도문이 많이 나돌기도 했다.

특히 여름 장마철 때면 수로는 범람할 정도의 수량을 보이며 농수로 위 둑에도 물이 차 넘치기도 했다. 그때면 아니 넘치던 물이 안전한 수위를 보일 때면 고였던 폐수도 사라지고 저수지에서 흘러들어온 물과 고기 등으로 그물을 치면 정말 많은 양의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잡은 고기를 부모님이 외출하고 계시지 않는 집을 골라 매운탕을 끓이고 7홉들이 소주를 몇 병 사들고 가 시간을 죽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생각으론 어죽을 가지고 음식 장사를 할까 싶기도 했는데 요즘 우리 동네 어죽 집에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먹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참 다양한 먹거리가 필요한 사회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냇가를 가지고 있는 동네 어디서나 어죽을 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자료를 찾다 보니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어죽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 동네에서는 아침에 잡은 잡어를 대야에 담아 맑은 물로 반나절 정도 해감을 시켜 준다. 흙냄새와 물고기 비린내가 정말 심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상수도 시설도 갖춰 있지 않아 짭조름한 지하수를 퍼 올려 해감을 했는데 그 지하수를 지금 보면 정말 마시기 불가능한 탁도와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감시킨 물고기의 배를 따고 내장과 부레, 피 그리고 비늘을 전부 제거하고 난 다음 밀가루로 하얗게 목욕을 시키고 고추장과 고추 대파 깻잎 등속을 넣어 끓여 내면 정말 맛있는 술안주가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내륙에서의 민물고기 매운탕은 상당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던 것 같다. 금강 상류지역인 전라도 무주에서도 어죽은 흔하면서도 귀한 별미였다고 한다. 무주 읍내 군청 뒷골목의 금강식당과 무주읍 내도리 앞 섬마을과 뒷섬 마을의 섬마을, 강나루 등 어죽 전문 식당이다.

무주에서 사용되는 물고기들은 금강에서 잡아 올린 모래무지, 동자개(빠가사리), 피라미 등이다.

충북 괴산지역에서도 내장을 빼낸 민물고기를 푹 삶은 국물을 체에 걸러낸 다음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풀고 물에 불린 쌀ㆍ다진 마늘ㆍ다진 양파ㆍ민물새우를 넣고 끓이다가 채 썬 깻잎ㆍ다진 풋고추ㆍ들깻가루ㆍ참기름 등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 어죽이 있다고 한다.

충남 예산에 있는 예당저수지 주변에도 많은 어죽 집이 존재한다. 얼마 전 가본 면천면 원동리 인근의 면천 가든 또한 어죽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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