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이라는 단어를 찾다 보니 광과 같은 의미로 헛간, 창고, 곳간(골방)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내 기억 속에서는 “광”과 “골방”을 가진 시골 집들이 많았다. 세계 한민족 문화대전에 등장하는 조선족의 한옥구조에 나오는 광의 쓰임새와는 조금 다른 것 같기 했다.
다음은 세계 한민족 문화대전에 있는 광과 창고 등에 대한 설명이다.
창고는 농사일을 기본 생산 활동으로 하는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광’, ‘헛간’, ‘고방(庫房)’이라고도 불렀다.
광은 살림집에서 음식 재료나 농기구 또는 생활 용구 등을 보관하기 위해서 만든 작은 칸이다. 광을 집 몸채 안에 배치한 양통 집에서는 고방이라고 불렀고, 광을 집 몸채와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짓거나 앞 채의 어느 한 칸을 이용한 외통 집에서는 헛간[허청]이라고 불렀다. 외통 집의 헛간에는 앞뜰 쪽으로 벽체가 없고 문을 달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은 양통 집의 광의 형식과 다른 점이었다.
광에는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시렁과 선반이 설치되었는데 밑에 설치된 시렁 위에는 쌀독 같은 것을 올려놓고, 그 위에 설치된 선반 위에는 광주리나 동이와 같은 작고 가벼운 생활 도구들을 올려놓았다. 또 광에는 여러 가지 음식물을 보관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명절이나 대사 때 음식물을 만들어 광주리나 함지에 담아서 선반에 놀려놓기도 하였다. 광은 매 가정의 형편에 따라 규모가 달랐는데 경제 사정이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한 칸 정도의 광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유한 집에서는 여러 개의 광을 가지고 있었다. [출처 세계 한민족 문화대전-창고]
나는 광을 할머니, 어두움, 엿, 과즐 등의 먹거리, 보리쌀, 항아리, 토방 류의 단어로 연결한다.
우리가 헛간이라고 불렀던 것은 집 밖에 창고 형식으로 문을 달지 않고 만든 것으로 아궁이에서 퍼낸 재를 쏟아 놓거나 똥통, 멍석 혹은 농사용 쟁기 등을 들여놓았던 곳이었다. 창고가 헛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창고는 좀 더 깨끗하고 많은 물품을 가득 채워 관리가 잘 되도록 문을 매달아 놓은 정도다.
또 골방은 주로 술단지와 잔칫날이나 명절에 사용하기 위해 다량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보관하던 곳으로 사용했다. 골방은 항상 어두컴컴하고 냉한 기운이 돌았는데 실제로 웃풍처럼 겨울철 문틈을 헤집고 들어오는 칼바람을 막기 위해 북쪽에 베란다나 다용도실과 같은 용도로 설치했다. 따라서 대부분 안방이나 윗방과 나란하게 지금의 베란다 같은 구조로 배치했다. 그러기에 골방은 늘 시원한 느낌이고 볕이 잘 들지 않았다는 기억이다.
그에 비해 “광”은 기역자 집이나 미음자 집 혹은 안채와 병렬로 지어진 집에서 바깥채에 속하는 곳에 집의 대문과 같은 종류의 빗장이 달린 나무 문에 문고리 등을 달아 쌀이나 김치 등을 보관했다. 많이 들었던 광 열쇠 이야기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시어머니가 열쇠를 관리했는데 고부간의 갈등 여부에 따라 열쇠의 주인이 바뀌기도 한다는 혹은 인심이 광에서 난다고 광이 풍족할수록 이웃에 대한 인심도 달랐다는 이야기 말이다.
깊이 있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대용량의 보관은 광에다 하고 바로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적은 양의 음식 재료 등은 부엌 옆에 달린 골방에다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골방과 광은 문의 크기가 현격하게 다르고 규모도 다르다. 골방은 안방이나 안방과. 나란히 이어진 윗방 등에 붙여 만든 것이고 문 역시 안방 문 보다도 작았다. 그러나 광은 규모가 크고 보관하는 식재료도 대용량의 손질되지 않은 물목이거나 손질되어 있어도 양이 골방에 보관할 수준을 벗어난 물목을 저장하는 장소이다. 또 광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문 상단이나 옆에 공기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이밖에도 골방에는 시렁을 매달아 음식물이나 부엌 세간살이를 올려놓도록 했다. 물론 광에도 긴 통나무 두 개로 시렁을 만들어 물건을 올려놓도록 했다. 광의 크기에 따라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보관되기도 했는데 보관 목록은 아마도 집주인 양반이 무엇을 중요시했는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넓은 집에서는 광을 김칫광·장광·나뭇광·쌀광 등 여러 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는데 적어도 우리 시골에는 아흔아홉 칸 집이 없어서인지 기억에는 없다. 다만 광이 지금의 다용도실에 설치된 대형 냉장고 같이 보관 품목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기억 속의 광은 항상 습한 기운이 있어 벽체의 하단 부위와 바닥이 축축했다.
겨울철이면 그곳에 갱엿이나 물엿으로 만든 과즐, 가을철이면 사과나 배등이 보관되어 있었고, 추석 때 만든 송편도 광주리에 삼베로 만든 천이 덮여 있었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