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그리고 오징어 게임

by 이상훈

요즘 오징어 게임이라는 것이 유행이다.

우리 시골에서는 "오징어징"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다.

마당 위에 그려진 그림은 지금 한창 유행 중인 오징어 게임과 같다. 게임의 룰은 기억나지 않지만 프리 한 팀과 갇힌 팀이 있고 가운데 좁다란 통로를 통과하여 상부의 오징어 머리를 찍으면 살아남았나... 아님 외부의 프리 한 팀이 오징어 안의 다른 한 팀을 밖으로 끌어낼수록 이기는 게임이었나 싶게 가물가물하다.

암튼 “오징어 찡”

이 게임을 하려면 넓은 마당이 필요했다. 단순히 오징어 모양을 그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유롭게 도망칠 공간까지 확보되려면 가로 × 세로가 적어도 7 m×10m 이상은 되어야 할 듯싶다. 물론 몇 명의 아이들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게임은 적어도 8명 이상은 참여해야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방어하는 것도 그렇고 오징어를 사방에서 포위에 잡아당기는 것도 그렇고 암튼 좀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지금이야 시골에 아이들이 없으니 이 게임을 할 여력도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이웃 시골 면단위 지역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면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신생아 출생률이 0%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더 말을 해 무엇하랴.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출생률이 떨어졌음에도 아이들 간의 경쟁력은 더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더 높은 배움이 요구되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말 수고스러운 일일 것 같다.

어쨌든 제목이 타작마당이니 그 주제로 넘어가자면 마당은 가을 수확기에 온갖 일을 도맡아 협조한다. 마당은 장마철이 지나면서부터 고추가 말려지고 벼가 말려지고 콩이 말려지고 타작되고, 깨가 말려지고 타작되고 쉴 사이가 없다. 볕 좋은 가을날의 풍광은 수면 밑의 오리발이 간과된 채 호수 위에서 헤엄치는 오리 무리를 그려놓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과 같다.

예전 시골 풍경화에서 흔히 보아오던 고추가 멍석에 널려 있고 옆에서는 아주머니가 키로 수확한 깨에 이물질을 걸러내는 모습 말이다. 한 장면을 더 하자면 여백에 주인집 아저씨가 콩꼬투리를 도리깨질하는 모습까지 그려 넣으면 그림의 구도가 꽉 차게 된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면 발동기와 탈곡기가 설치되고 벼 타작도 이 마당에서 하게 된다. 벼 타작이나 곡물을 말리기 위해서 마당은 평평해야 한다.

집집마다 이 평평함을 유지하기 위해 추석을 전후해서 마당을 일구고 물을 뿌려 흙을 갠다. 흙이 어느 정도 마르면 그 위에 멍석을 깔고 발로 밟아 평탄화 작업을 한다. 그런 마당을 지나 학교에 가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마당 가장자리 마른 곳을 지나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진흙이 신발에 묻기가 다반사였다. 마당의 흙이 다 마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뭉게구름과 코스모스 꽃송이를 흔드는 상쾌한 가을바람 계속 이어지는 가을날이지만 학교 가는 등굣길은 이런 장애물이 꼭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고개 숙인 벼이삭에 이슬이 내려앉으면 온전히 등교하는 아이들의 양말과 신발이 씻어 주어야 했다.

추석날 얻어 신은 마징가 그림의 운동화 바닥은 지나쳐온 옆집 마당의 진흙으로 덕지덕지해졌고, 천과 고무로 된 표면은 아침이슬과 함께 한 들꽃 가루가 가득 묻혀있었다.



마당에 오징어를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수고스럼에 반발을 하는 모양새다. 마당에 오징어를 그려 넣고 아이들이 모여 노는 것을 어른들이 싫어하는 것은 마당이 수확을 위해 쓰여야 할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나 학교 운동장을 벗어나면 놀 공간이 많지 않은 것은 매일반이다. 요즘에야 공원이 생기고 뛰어놀 공터가 많아졌지만 의외로 예전에 더 많았을 것 같은 평지 공터는 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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