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자란 형제들이 식탁에서 말싸움을 하는 걸 보고 엄마는 적지 않게 놀란다.
난 너희들 정말 다른 집 아이들처럼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았거든. 동생이 이렇게 형의 말에 반기를 들며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 건 좀 심하지 않니.
돌이켜 보면 전남편과 연애하던 1년여를 제외하곤 항상 살얼음판이었다. 전남편은 나쁘지 않은 성격이었으나 우유부단했다.
시댁에 행사가 있는 날은 시어머니의 간섭으로 항상 마음을 졸여야 했다. 가족 내부 결정사항도 번복되기 일쑤였다. 결국 이혼에 이르렀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일반 가정에서도 장남은 전통적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려고 하고 또 주변으로부터 책임지는 자세를 갖도록 요구받는다.
편모 가정에서는 특히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장남은 누구보다 할아버지나 어머니 등으로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지켜내라는 유형무형의 뜻을 전달받는다. 어릴 적부터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당연히 장남은 가족 내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확인된 위치에서 일정 부분 자기의 희생과 주변에서 배워온 - 이를 테면 이웃 어른이나 친가 및 외가의 서열 질서와 행동 양식 그리고 언어습관 - 모방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 내려는 고민을 하게 된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해와 협조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지는 데 반하여 모방된 가정에서는 필수적인 것들이 일부 부재하다 보니 간혹 서로의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 과정이 생략되기도 한다. 혹은 이 과정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 구성원 각자의 내적인 부분으로. 옮겨가 곪기도 한다. 많은 결손 가정의 경우 보통 아동기에서 느껴야 할 사랑이 부족하기도 한데 이 결핍된 사랑과 통상의 가족 집단의 운영을 모방한 가족 내 질서는 가족 구성원 각각의 마음에 불안을 잉태하기도 한다.
모방된 보여주기 식 가정 내 질서가 갖는 문제는 무엇일까?
외향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듯 보이는 가족임에도 실은 가정 내에서 토닥토닥하면서 불협화음을 보이는 가정보다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정은 따뜻한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주고받는 것이 훈련되는 곳이다. 훈련장이 되려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 채널이 개설되어야 하고 중재자가 있어야 하고 공간과 시간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식탁에서나 일요일 아침에 부모님의 침대에서나 수시로 말이다. 물론 그것이 없다고 따뜻한 가정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확률적으로 그런 구성요소를 갖는 것이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수 요소라고 보는 것도 물론 문제가 있다. 개별 개별의 가정마다 혹은 아이마다 상황과 성향이 제각각이어서 동일하게 적용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혼가정에 있는 아이가 아동기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반적이지 않은 특정한 성향을 갖게 된 것이 일차적으로는 아버지의 부재 탓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친지나 이웃 등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이 2차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는 교우관계나 선후배 관계, 동생 친구들이나 형들의 친구와의 관계 등도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밖에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가족 구성원 보통은 각자가 미력하나마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기 마련인데 이때에 아이들의 성향을 조금은 더 세심하게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말이다. 아이의 나이가 그만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를 살펴야 하기에 말이다.
얼마 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개그우먼 조혜련 씨가 딸과 함께 출연했는데 당시 조혜련 씨는 딸 윤아가 갑이고 자기가 을이라며 오히려 동료 개그 우먼 박나래가 더 편하다고 했다.
딸의 입장을 들어보면 딸 윤아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에 엄마와 같이 사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엄마가 있다는 것으로 너무 행복해서 공부도 잘됐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외로워서 힘들다”는 말을 들은 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딸 윤아는 “엄마는 우리가 아니고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다고 말한다. 또 “엄마가 저를 혼낼 때, 엄마가 새아빠와 더 친하고 나랑 엄마가 더 안 친한, 내 편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우리 가족은 다 잘 지내는데 나만 이상하고 나만 꽁해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을 느꼈다”라고 하기도 했다.
감정이 예민한 시기에 벌어지는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 커다란 충격이다.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충격의 양을 생각해 보고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해 보아야 한다. 아이가 선택한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보통 이해당사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힘든 상황이 된다. 모두가 처음인 상황이고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실제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감정에 더 많은 것을 호소한다.
이혼을 한 어머니는 가사 일과 함께 가족의 생계까지 도맡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에게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아이들의 말 수는 줄어들 것이고 이로 인해 엄마는 아이의 그런 상황을 이해할 기회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에서 아이들의 생각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고 아이들도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비춰기도 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본인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으로 아이들에게 문제가 없음을 아마 문제가 그렇게 까지 있겠어하며 조금이라도 편한 쪽으로 가려고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 각자는 현재의 상황이 대단히 못마땅하다. 그 시기에 누려야 했을 것을 누리지 못한 것도 있고 그러한 상황이 갖는 주변의 편견과 전해지는 말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상당한 스트레스가 쌓여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으나 그 자존심으로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한 불편한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억눌린 감정 속에서 사소한 불씨 하나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 놓는다. 예를 들어 집안 행사라도 벌어졌다면 친척들이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에 다른 아이에게는 해주지 않는 말을 해 줄 수도 있다. 그 말이 필요하든 아니 든 아이는 다른 아이와 비교가 되는 상황이다. 아이는 더욱 소심해지고 어쩌면 아이에게 어른들의 충고가 귀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와 닻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이의 성향과 관계가 있다. 어쩌면 아이는 친척이 웃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자괴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자기가 느낀 것들에 대한 불만을 형제들에게 쏟아 놓을 수도 있다.
차남인 경우는 똑같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안타까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형의 지나친 간섭이 불만이 될 수 있다. 물론 가족 성원 모두는 이런 행동과 말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목적은 결국 부족해진 사랑을 증폭시켜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것인데 사랑이 아니고 형식만 가득해질 수 있다. 또 아버지의 권위를 다른 이가 대신하는 권위만 생겨날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해서 성인이 되고 당시의 어려움이 극복되기도 하지만 일부분의 경우 형제간의 그러한 갈등이 폭발하기도 한다. 더 이상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상황에서 너는 내 동생이고 너는 내 형이고 하는 습관화된 구속이 서로에게 불편만을 가중시키기에 말이다. 물론 사랑을 전제로 서로 주고받는 것 등이 연습되었다면 무난히 지나갈 수 있고 일반적인 가정의 형 동생과 같은 사이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형식에 너무 의존한 모방된 가족관계에서는 불편한 요소들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상투적인 해결책보다 보듬어 사랑을 해주고 말로 표현해 주어야 한다. 쉬운 듯하면서 연습되어 있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말이다. 잠시 잠깐의 사랑이라면 몰라도 깊이 있게 일상생활에 스며들게 하려면 오랜 시간 연습과 보고 배우기가 필요하다.
누구 탓이 아니다. 내 탓이라고 문제를 몰아가도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서로가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사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제가 전혀 없는 처음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분명 않는다. 하지만 관계를 조금씩 나아지게는 할 수 있다.
어머니도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정색할 필요는 없다. 물론 단초야 이혼이나 사별이 원인이어서 발단이 된 것이지만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그러한 가족이 생겨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머니 역시 갑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려야 하고 쉽지 않은 결정을 연속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변에 이를 상담할 만한 이를 찾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것 자체를 바란다는 것이 무리인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각자가 남 탓이라거나 자기 탓으로 만 보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한국사회에서의 가족에 대한 소속감과 위계질서는 참 극명하다.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상당히 오랜 세월을 농경사회의 특징인 정착생활을 해왔다. 정착된 사회에서는 언어나 행동양식에서 있어서 유목민족 보다 많은 것들을 구성원에게 요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정한 복종을 강요하고 질서를 유지시켜 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소유물이라는 무의식적 인식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오랜 기간 우리 몸속 DNA에 각인된 것을 하루아침에 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또 자식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줄었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 또한 많지만 무의식 상태에서는 습관화되고 각인된 것이기에 표출되기도 한다.
많은 가정을 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자식 간 혹은 형제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 도움에 그치지 않고 도움을 바탕으로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과연 서로를 소유물로 보는 것인지 독립된 객체로 보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이러한 질서는 혈연관계가 아닌 일반 사회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가정에서도 보인다는 것이 우리가 그만큼 정서적으로 얽힌 가정이라는 독특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럴 바에는 끊고 맺는 것이 확실한 일반 사회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주고받는 것 이외에 다른 것에 대한 간섭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 서로 간에 독립된 상태이기에 지나 친 간섭을 부당하다고 느끼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 독립된 결정을 할 수 있으려면 경제적인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 시스템을 가정 내로 도입해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여 나가려면 무엇이 좋다 나쁘다를 생각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것 특히 가족 내의 서열 혹은 권력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은 줄여야 한다.
또한 어떠한 상황이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버려야 한다. 누구 탓으로 몰아가는 것을 통해 상황이 개선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누구 탓을 통해 면죄부를 받는다고 심리적으로 평안을 누리기도 쉽지 않다. 탓이라고 한다면 모두의 탓이 더 옳겠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모든 정황이 그럴 만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단순히 1~2가지가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해 봐야 별 의미도 없다. 또한 그러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모두가 심리학을 전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바탕은 사람이고 또 주변인과의 관계이다. 그 관계는 사랑이고 공평이다. 관계는 서로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해 나가는데서 출발한다.
권위만을 위하거나 가족 내의 질서만을 위해 유형무형의 제도와 전통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로에게 서로의 뜻을 잘 전달하고 그것이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 공감해 나가는 것이 평안한 가정을 이루어내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누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 전과 달리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다.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관념이나 성장하면서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해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팩트 만을 놓고 - 실은 그 팩트도 많은 부분이 오류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 성찰하다 보면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