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다양화되면서 혹은 정신과 물질의 급속한 진전으로 개개인이 느끼는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는 혼란 그 자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나이 든 중년의 경우 개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더불어 삶에 대한 피로도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야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외부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이가 될수록 사회에서 소외되는 느낌이 크지요.
한국과 일본 참 숙명적인 관계이지요. 일본은 1850년대에 개항을 해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청년들을 서구 유럽과 미국 등지로 유학을 시켜 빠르게 급성장합니다. 50년이 지난 후에는 열강이 되어서 또 우리를 침범하기도 하고요. 50년이란 세월이 어느 나라에게는 참 많은 변화를 일으킨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 만에 불모지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잖아요. 그전에 조선 500년은 참 변화가 느리게 이어졌었는데 말이죠. 예전 500년 동안은 어쩌면 의식의 흐름 즉 사상이나 자연의 이치만 배우면 됐는데 오늘날을 보면 물질문명의 발달로 급속하게 몸이 익혀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정신이 없지요. 그러다 보니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잘못 머무르면 물질세계에서 한 참을 뒤처지게 되고 정신적으로 그 공백을 채워 나가야 하니까요. 그 채움이란 것이 외로움 허전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식당에서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웠던 분의 이야기가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고, 또 스마트 폰 등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열차 예매나 영화 예매에서 불편함이 크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고요. 보고 듣는 제삼자야 그렇겠구나 싶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요. 주변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마음도 있고 한편으로는 자괴감도 심하게 들었을 것으로 봅니다. 일부 과잉행동 장애를 가진 어른들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이겠지요.
또 사회변화가 일반 대중의 뜻은 아니잖아요. 국가가 목적에 의해 아니면 기업이 수익을 위해 변화하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받아들이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지요. 발전도 좋고 다수의 의견대로 진행해 나가는 것도 좋은데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가급적 단순하고 그러면서 편리하게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인간의 삶 속에서 녹아나는 발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마트폰 앱을 보아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습니다. 사회 시스템과 경쟁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것들이고 이를 통해 기술의 진보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좀 더 방향성을 가지고 시스템의 단순화를 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 통해 오감이 노후화하는 어른들의 삶에도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의 경우 이런 물질의 진전이 몸의 편안함을 가져오는지는 몰라도 이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은 말도 못 하게 크지요.
물질이 발전한다는 것은 정신도 그만큼 발전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도 합니다. 정신적인 발전이 없는데 물질만 홀로 성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잖아요. 사람의 다양한 정신이 물질의 발전을 끌어올리기 때문이지요. 생각이 미천한데 물질이 생각을 앞질러 발전할 수는 없어요. 발전된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도 몇몇 선각자나 선구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문제라고 봅니다.
감정을 불편하게 하는 다른 하나는 관계이지요. 사회생활을 하는 중년들은 젊은이들과의 관계에서 힘든 경험을 많이 했을 것으로 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인턴이라 하더라도 전혀 눈치 안 보고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철저하게 지켜나갑니다. 혹여 라도 불편해할까 손해 보는 것은 없을까 이리저리 챙겨 주어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입니다.
어디에도 나의 감정을 드러 내놓고 의견을 나눌만한 곳이 없습니다. 광고에 보면 AI와 소통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저로서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정신과 감정의 빈곤함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소통할 사람은 갈수록 적어지고 주식시장의 급락, 국제 정세의 위태로움 등으로 개인의 감정상태는 더욱 불안정해 지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감정이 격해 지기도 합니다. 물론 나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더 각박해질 수 밖에 없겠지요. 봉쇄 수도원이나 절에 들어가 수양을 하는 분들이라면은 몰라도 관심받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의 감정은 안녕하신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