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갖는 솔직함은 어릴 적 가졌던 지고지순한 그런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싶다.
솔직하게 말하자 해 놓고 관계가 악화된 경우가 참 많다.
그러기에 솔직함은 화를 부른다.
솔직함은 어느 곳에서는 우아함이나 당당함과 같은 멋짐을 드러나게 한다. 그렇지만 당시의 상황이나 솔직함의 당사자가 누구였나에 따라 미묘한 아니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에게는 원래 그대로의 멋짐을 조금 부족한 이에게는 동정심을 갖게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상황 상황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솔직함이란 당당함을 갖게 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행위능력과 권리능력을 갖춘 성인의 바탕이 되게 할 좋은 연습 수단이다.
성인 관계에 있어서 솔직함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관계를 좋게 할 수 있고 좋은 인격체로 마주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런데 때론 솔직함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 않아도 될 솔직함으로 상대를 부끄럽게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잘 보이려는 교언영색의 일부로 이용될 수 있다. 솔직함을 가장하여 상대를 중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국가나 단체 특히 종교단체는 사회 혹은 종교 윤리를 강조하면서 적절한 통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과연 솔직함으로 인한 혜택은 누가 누리는 것인가?
종교생활에서는 솔직함을 요구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심신이 불안한 이들을 겁박하기도 한다.
가톨릭이나 교회는 예수님께서 속죄(贖罪)의 제물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맞으신 것을 강조한다. 이미 인류는 예수님의 속죄 제물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았고 하느님과 화해했다.
그럼에도 간혹 매체 등을 통하여 심신이 허약한 이들을 이용하는 종교단체들이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이를 통해 보면 종교가 솔직함 이란 인간의 선한 바탕을 지배해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면도 없지 않다.
신앙고백이라는 자기반성과 죄를 사해주는 혜택 그 사이에 있는 비밀의 공유와 제재수단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솔직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솔직함은 자신에게 떳떳함을 주려는 장치일지 모른다.
솔직함으로써 스스로가 편안함을 얻으려 하거나 당위성을 갖게 하는 것 말이다.
가장된 솔직함도 있다. 일부러 드러낸 솔직함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이는 권력을 가진 상대방과 밀착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거나 인정받으려고 할 때 등장한다. 잘 보여야 할 선생님과의 사이 혹은 동료의 비밀을 솔직함으로 포장하여 누설함으로써 동료가 받아야 할 혜택을 가로채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일기를 써봐라 하는 글을 보았는데
정말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결혼한 사람이 타인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될까?
비슷한 후배들을 놓고 내가 누구를 더 편애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될까?
부부간에 솔직하게 이러이러한 너의 모습이 보기 안 좋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얻을 게 무엇이 있을까?
솔직함도 얻는 게 있어야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