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을 잡아 주는 것은 무엇일까?

by 이상훈


세상살이에 흔들리지 않고 묵직한 행동거지를 하는 이들을 보면 위안이 된다. 세상을 직관하는 시선을 갖은 이를 보면 존경심이 든다. 그런데 나 스스로 그런 것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흉내를 내기도 버겁다.


세상을 관통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혜를 얻는 것과 같다.

얼마 전에 오랜 산다는 것이 슬픈 일이 되는 경우라는 짧은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첫째가 돈 없이 오래 사는 것, 둘째가 병과 함께 오래 사는 것, 셋째가 친구 없이 오래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내용 모두에 내가 해당될 것 같은 불길함이 있다. 돈도 없고 성격도 부드럽지 않고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 아픈 것들이 나타나 서다.

사귐은 적지 않은 이를 만나게 하는데 어떤 이들은 생각이 다른 것에 화를 내기도 하고 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기도 한다. 편안한 성격이 세상살이에 좋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겨나는 고집은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게 한다.

나이가 먹어 갈수록 가르침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나이 든 이를 가르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기보다 어렵다.라는 말이 최근에 유행한다. 물론 정보량이 많은 젊은이들에게의 가르침도 꼰대로 불리기 십상인 세상이지만 말이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 낸 이들은 자기만의 관점으로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세상을 지금껏 잘 살아 냈다고 하는 막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까. 반감이 그나마 적은 유머를 통하여 웃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보다 효과적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가 살기에 편안한 이웃이 될 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 말이다. 당사자가 그렇게 살아 낸 만큼 상대방도 그 만의 방식으로 삶을 거룩히 일구었기에 말이다. 세상을 자기가 생각해 낸 일정한 틀 안에서 살아 냈다는 것은 대단히 존중받을 만하다. 아이를 길러내고 사회에 내보내 역할을 하도록 한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다 하는 것처럼 보이고 평범한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의외로 많다. 보통의 삶에서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은 고행을 하는 수도자와 같이 많은 어려움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아이를 키워내 보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어느 정도 틀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도 생겨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들도 부지기수이다.


우리는 안식을 찾아 떠도는 부초와 같다. 목적이 안식을 찾는 것임에도 각자의 마음은 한시도 평안함 없이 격랑이 으르렁 대는 폭풍우 속의 바다와 같다는 게 아이러니 하다. 산다는 것이 긴 사이클이고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 인식하면서도 말이다. 하향하는 사이클이 지나면 상향하는 사이클이 도래하는 것을 긴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글은 이렇게 쓰면서도 드는 생각은 참 헛되다. 이치를 알고 있지만 순간순간 찾아오는 격정적인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참 많은 연습이 필요할 만큼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또 내려놓아도 내려놓은 것이 아닌 경우도 많다. 밖으로 드러나지도 않아서 알기도 쉽지 않고 막상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자기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이 다 그렇지 하며 한계점을 인정하며, 현재를 고수하는 경향도 있다.

인간이 어차피 그리 될 것인데 하고 말이다.


세상살이에 흙 수저와 금 수저가 있듯이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반이다. 인위적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이 따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가 각각의 쓰임새가 있는 듯하다. 정반합과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총량의 법칙이나 질량 보존의 법칙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존재해야 타인도 존재한다. 타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나와 같지 않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고 그런 상황이면 피해 가는 가는 것이 세상을 편히 살아가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차를 마시기 위해 인스턴트 티백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진정한 차향을 맡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차를 좋아하는 이도 꽤 많다. 편리하게 마시는 만큼 효율적이며 시간을 절약하는 장점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어떤 이는 차를 직접 재배하고 새순을 똑똑 따고 뜨거운 솥에 덖음을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말린 찻잎으로 찻물을 끓여내고 두 번째 우려낸 찻잎을 통하여 떫음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스토리와 함께 전해지는 묵직한 차향을 즐기는 이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경건함이 느껴지고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깊이를 가지게 해서 좋다는 이도 있다. 결국은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인스턴트 차는 어쩌면 “보여지는 멋”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바쁜 삶에서는 필요하기도 하고 효율적이며 간편해 보인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차의 종류가 너무 많고 어쩌면 그중 하나의 맛을 보는 데 불과할 뿐이기에 기억되지 못하고 소비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을 들게 한다.

지금의 감정은 고요하지는 않다.

보여 주려고 하는 사회에 살다 보면 보여 줄 것이 없는 이는 참 힘이 든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심할지도 모르겠다.

돈 없이 오래 사는 것, 병과 함께 오래 사는 것, 친구 없이 오래 사는 것이 참 많이 불편할 것도 같은데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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