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가 온 다음 떨어지는 처마의 낙수 소리가 나는 좋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에는 일정하고 길게 늘어뜨려지는 편안한 리듬이 있어 나는 좋다 맹렬했던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전 살짝 소름 돋는 선선한 바람이 나는 좋다 비 오는 날 아침엔 온돌 바닥의 따스한 온기를 맘껏 즐길 수 있는 평안함이 있어 나는 좋다 비가 그친 다음 빗물이 담긴 그릇에 사뿐히 던져진 낙수 방울처럼 맑게 울려오는 그 소리는 베인 상처가 아물듯 온몸의 휴식처럼 달콤하다. 그때는 알았을까? 이 평안이 아침 녁 아버지께서 지피신 군불과 땅 위를 맨 처음 두드린 빗방울로 시작된 것임을...
맨 처음 땅 위에 툭 던져져 흙먼지 휘날리며 맹렬히 울부짖는 빗소리에는 들켜버린 상처를 소독하는 알코올솜의 불편한 냄새가 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