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여름은 지루하다.
돼지우리 안에 키우던 토끼들에게 주려고 한낮에 방죽에 나가 토끼풀을 뜯고 콩밭에 나가 콩잎을 한 망태기를 뜯어 와도 태양은 제자리에 있는 듯했다. 포장되어 있지 않은 대문 앞길은 언제나 축축해 해를 덜 받는 곳은 푸른 이끼가 끊임없이 자랐다. 축축한 뻘흙 지금 아마도 천수만 등 개간지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땅이다. 그런 땅이라서 비라도 조금 내리면 장화 없이는 밖에 나가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방학이거나 혹은 휴일이거나 하는 날에 비가 내리면 사둘을 가지고 수로에 나가 버들치나 메기 붕어 쏘가리 등을 들어 올리는 재미가 있다. 시골 아이들에게 비는 놀잇감이다. 일부러 비를 맞기도 하고 장화를 신고 물웅덩이에서 장난도 친다.
유럽의 지금처럼 덥지는 않았지만 여름 방학 때의 한 낮의 태양은 많은 것들을 주눅 들게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집안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해가림 막이 없어도 기저귀를 뗄 나이가 지나면 너나없이 수로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지푸라기에 살이 통통히 오른 하얀색의 옥수수 벌레를 묶어 물속에 넣었다 꺼내는 일을 했다. 그러면 새까맣게 송사리 때가 모여드는 데 아침저녁으로 물을 떠다 세수를 하는 용도로 쓰였던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띄어 놓고 그 안에 송사리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열심히 몇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도 태양은 식을 줄 몰랐다. 더위 지쳐 물에 들어가 고무신으로 물을 천지사방으로 뿌려대도 태양의 열기는 그대로 인 듯 했다.
들판 끝에 위치한 친구 집에라도 다녀오려면 땟국 물 같은 땀방울을 한 바가지 정도는 쏟아 낼 결심을 해야 했다. 그 길에는 마실 물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구할 데도 마땅치 않았다. 여름 철 가뭄이 들면 마중물을 부어 쓰는 펌프도 뻘겋게 녹이 슬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았는데 머리가 조금 자라면 밤톨 같이 된다. 까슬까슬한 밤톨 머리부터 볼을 타고 땀이 흘러내리다 입안에 들어가기도 한다. 맨발로 신은 고무신엔 흙이 들어가 뭉쳐져 미끌거린다. 신발 윗부분 가장자리와 접한 발등은 땀과 흙이 한 몸으로 어울려 찐득하게 검은색 라인을 그려냈다.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당시 입었던 옷가지가 떠오른다. 너무 오래 입어서인지 바지 색상이나 윗도리의 문양도 선명하다. 여름엔 대체로 러닝셔츠 하나로 지내기 일쑤였다. 기억나는 윗옷은 짙은 쑥색 바탕에 아이보리 색상의 원형 무늬가 촘촘히 박힌 디자인이다. 세줄 무늬 운동복도 참 자주 입고 다녔다. 학교 운동복은 감청색 반바지에 주황색 반팔 레이온 티였는데 왼쪽 가슴에 학교 마크가 붙어 있고 둥근 목선과 반팔 하단 끝선에는 감청색 테두리가 있었다. 레이온이어서 불에도 잘 타고 물 흡수도 잘되고 마르는 속도도 빨랐다. 어디에 앉았다 일어나도 그렇게 표가 나지 않아 이를테면 항오염도가 높은 체육복이었다. 그런데 운동회 즈음에서만 입었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팬티도 잘 사주지 않아서 홑 반바지 차림이 흔했다. 아마도 그 반바지를 입고 쭈그리고 앉으면 중요 부위가 그대로 노출되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혹시라도 실밥이 터진 걸 모르고 입고 온 날이면 하루 종일 실밥이 터진 부위가 신경 쓰였고 그곳이 중요 부위이면 친구들이 볼까 노심초사했었던 기억이 조금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어리나 늙으나 자존심과 욕심 이런 것들과 함께 하는 것 같다. 포기한 것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갑자기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한 때 법무부 장관이기도 했던 조국 씨의 자녀에 대한 젊은 이들의 분노와 한동훈 법무장관 자녀의 허위 스펙 논란에 대한 젊은이들의 침묵이 생각난다. 너무 다른 대응이다. 도덕성도 상대적인 것인가. 한쪽은 만만한 경쟁 상대여서 해볼 만하기에 다른 한쪽은 도저히 경쟁상대로 볼 수 없어서 “포기”한 것이라고 진단한 어느 평론가의 말이 적합한 것일까도 생각해 본다.
한쪽은 상장이 진실이냐 아니냐 정도이고 한쪽은 돈을 주고 허위로 가짜 스펙을 쌓았는데도 말이다.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처럼 아무렇게 처발라도 되는 것인지 애처롭다.
그때도 오랜 친구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고 도시에서 전학 온 피부가 하얀 친구에게는 다른 세상 친구처럼 보여서 인지 많은 아이들이 친절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저녁이 되면 하루살이가 하늘 가득 난다. 절기로 추분이 지나면 벼나 콩잎에 이슬이 맺힌다. 선선함도 잠시 하루살이가 하늘 가득히 몰려든다.
시골의 삶은 지금 생각해도 벌레와의 전쟁 아니면 무료함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