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잎은 억세다. 길쭉한 잎새의 가장자리 마다에는 까슬까슬한 가시들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어린아이의 연한 손으로 잎사귀를 따다가 손을 다치기 십상이다. 섬유 조직이 갈대잎 처럼 가로로 길게 되어 있어 길게 찢기 쉽다. 어린 시절 몇 차례 옥수수 잎으로 배를 만들어 냇물에 띄워 보는 시도도 했지만 갈댓잎으로 만든 배만큼 물에 잘 뜨지 않고 가라앉기 일쑤였다.
옥수수가 처음 흙을 밀치고 올라온 것을 보면 보리 싹 같기도 하고 밀 싹 같기도 해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런데 몸집을 빠르게 부풀려가면서 자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옥수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특이하게 옥수수 줄기에는 약간의 붉은빛이 동반되어 있다. 다 성장한 옥수수 뿌리를 보아도 그렇다. 옥수수는 자라면서 뿌리줄기 일부를 땅 밖으로 노출하기도 하는 데 이때 붉은색 무늬를 뿌리줄기 일부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옥수수는 다 자라면서 사람 키 보다 높게 자라 성인 옥수수 밭에 들어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찾기 힘들다.
옥수수는 자웅이가(雌雄異家)로 암술과 수술이 분리되어 있다. 수술은 옥수숫대 맨 위쪽에 위치해 있고 암술은 수술 꽃가루가 잘 내려앉도록 수술로부터 길게 뿌리까지 이어진 줄기 아래쪽 대에 붙어 있으며, 옥수수 열매에서부터 수십 개의 관(줄)이 수염처럼 나와 있는 모양이다. 바람 부는 날 수분을 하는데 보통 위쪽 수술의 화분이 바람에 날려 자연스레 네 것 내 것 할 것 없이 모든 암술 위에 수술의 꽃가루를 뿌려댄다. 이처럼 옥수수는 바람에 의해 수분하는 데 전문용어로는 風媒花라 한다.
수술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가루가 길쭉길쭉하게 아래쪽 암술을 향해 그리운 마음을 담아 오밀조밀 붙어 있다. 바람 부는 날에는 대나무 숲 정도는 아니지만 사악 사악하며 옥수수 이파리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수분이 이루어지는 날은 말하자면 옥수수가 시집가는 날이다. 물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중력에 의해 내려앉기도 한다.
옥수수 밭에 나가 물끄러미 이파리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면 아련한 슬픔 같은 게 가슴 밑에서부터 목젖을 치받고 올라온다. 암술과 수술이 서로 다을 수 없는 거리에서 지켜보는 모양새가 아련한기분을 느끼게 하고 서로의 날카로운 이파리가 부딪히는 것에서는 나와 상관없는 이가 안겨주는 날카로움 같은 것을 보게 한다.
수술이 성숙해지면 수분이 시작된다. 주황빛과 푸른빛 거기에 붉은빛까지 감도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싱싱한 옥수수수염에 많은 양의 화분들이 내려앉는다.
얼마지 않아 수분이 마무리 되면 옥수수의 암수술은 급격한 노화과정을 겪는다. 얼마 전의 싱싱하고 알록달록했던 색감은 사라지고 푸석하고 암갈색의 볼품없는 모양새가 된다.
그럼에도 내피 안에 들어 있는 같은 줄기의 암술은 오랫 동안 싱싱함을 유지한다. 같은 줄기임에도 역할에 따라 생존기간이 확연히 다르다. 할 일을 마무리하면 떠나야 하는 이들과 할 일이 남아 계속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과 비슷하다.
옥수수 외피를 벗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수분을 끝낸 외피 밖의 검은 암수술과 외피 안쪽의 암수술이 얼마 큰 대조를 이루는지 말이다. 수분이 끝났어도 내부의 암수술은 상하지 않는다. 아마도 옥수수 알들을 싱싱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근묵자흑이라고나 할까! 외피 밖의 암수술이 썩거나 마르면 내부에 연결된 암수술 줄기도 썩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간혹 옥수수를 사다가 외피를 벗겨보면 알겠지만 내부에 연결된 암수술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싱싱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수분 작업이 끝나면 기능이 멸실시켜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불필요한 에너지 흐름을 차단하고 온전히 튼실한 열매를 맺는데 전념할 수 있기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수분이 끝난 노출된 암술은 곧바로 생기를 잃고 썩어 버린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정확히 필요한 부분까지만 썩는다는 것이 신비롭다. 옥수수 알에 붙어 있는 싱싱한 옥수수 암술은 아마 항균 및 정제 기능이 있는지 옥수수수염차로 많은 이들이 차로 이용하기도 한다.
각설하고 옥수수 알에 부드러운 껍질과 전분으로 가득 찰 무렵이면 옥수수 벌레들이 이곳저곳에 구멍을 뚫고 다닌다. 보통 외피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들어가는데 벌레 배설물들이 구멍 주변에 묻어 있다. 지금은 옥수수 값이 제법 되기에 아까운 면도 없지 않은데 어린 시절에는 벌레 구멍이 있는 옥수수를 밭주인 모르게 꺾어 벌레를 수확하고 옥수수 잔해를 아무도 모르게 처치해버린다. 옥수수 벌레는 대부분의 벌레가 그렇듯 연동운동으로 움직이며, 옥수수 전분으로 살을 찌워 검은색을 띠는 머리 주변을 제외하고는 온통 하얗다. 출생지가 깨끗하니 한 번도 옥수수 벌레가 징그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벌레를 싫어하는 이들은 정말 기겁할 노릇이다. 그래도 보통 낚시 밥으로 사용되는 지렁이류에 비하면 양반이다.
옥수수 껍질을 벗겨보자. 햇볕을 많이 받고 해충들의 공격받는 겉껍질은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여 두껍고 벽을 만들고 날카로운 잔털들로 무장을 시켰다. 그런데 내부는 벗기면 벗길수록 사람들이 매일 입는 속옷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껍질들로 겹겹이 채워져 있다. 섬유질이 부드러우면서 단단해 방석을 만들어도 될 만하다.
알맹이가 외부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고 씨앗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옥수수 유전자는 수만 년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꾸준히 발전시켜 온 것 같다. 옥수수알을 감싸 있는 껍질들이 이름은 같지만 외층이냐 내층이냐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인간사 역시 같다. 맡은 역할에 따라 수만 가지의 개성이 생겨난다. 처음에야 물론 인간사 역시 속잎 될지 겉잎이 될지 알 수 없어 비슷했지만 말이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얼굴이나 말씨에서 광범위한 차이를 갖는다. 이러한 차이를 갖는 것이 자연을 보아도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수명은 자연의 어느 것 보다 짧은 편이 아니어서 대나무 마디처럼 짧게 짧게 매듭을 짓고 일어설 필요가 있다. 많은 에너지가 회복력을 기르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 같다. 기간 기간마다의 매듭에 에너지를 투입하고 서로서로가 지탱할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회복하려는 자세를 계속 견지해야 만 긴 시간에 맞는 새로운 것들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한구석이 아련하고 슬픈 것은 이러한 인간의 복잡한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다.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박노해
봄비를 맞으며 옥수수를 심었다
알을 품은 비둘기랑 꿩들이 반쯤은 파먹고
그래도 옥수수 여린 싹은 보란 듯이 돋았다
6월의 태양과 비를 먹은 옥수수가
돌아서면 자라더니 7월이 되자 어머나,
내 키보다 훌쩍 커지며 알이 굵어진다.
때를 만난 옥수수처럼 무서운 건 없어라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네 맑은 눈빛도 좋은 생각도
애타고 땀 흘리고 몸부림쳐온 일들도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시련과 응축의 날들을 걸어온
작고 높고 깊고 단단한 꿈들도
때를 만난 사람보다 강력한 것은 없으니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네 눈물도 희망도 간절한 사랑도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