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

by 이상훈

누이란 단어는 참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서러움과 비슷한 결을 보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편안함 혹은 친숙함을 말할 때는 어떤 때인가?

익숙함이나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것이나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 혹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갈등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 것과 함께 따스함이나 인자함 혹은 부드러움이 내포된 것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 세대의 누이는 엄마라는 단어와 비슷한 따뜻하고 편안한 정서를 갖게 한다. 오히려 엄마라는 단어보다 더 편안하고 보호본능이 강하게 떠올리는 단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60-70년대의 추운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부모는 굉장히 어렵고 무서운 존재인 경우가 많았기에 말이다. 전쟁의 시절을 지낸 부모들은 따스함 보다는 강함으로 무장되어 있고 사랑의 표현도 거칠었다. 그것이 삶의 경쟁력이었기 때문일지 몰랐다. 지금에 와서는 따스함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큰 틀에서는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인사 역시 “식사하셨습니까? 혹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가 많았다. 하루를 버티기 위해 몸 안의 모든 세포가 꼿꼿이 서 있어야 할 만큼 전쟁 이후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런 세상에서의 누이는 평화였다. 이제 막 떡 잎을 떼어낸 부드럽고 연한 색상의 잎사귀 같이 말이다.

동네 아이들과의 놀이에 누이라도 함께 하면 얼마나 힘이 되던가 말이다. 그때의 느낌을 이제 생각해 보면 여름날 그늘 밑에 날아드는 미풍과도 같다. 혹은 가을날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난 뭉게구름 같기도 하다.

뭉게구름 같고 연하고 부드러운 아기 잎사귀 같은 누이가 학교에도 가지도 못하고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는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것도 매일매일 말이다. 모든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과 특정한 아이만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학교가 그렇게 좋은 곳은 못된다 하더라도 아이의 기분을 어지럽혀 놓기에는 어렵지 않았을 듯하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비우시는 부모님

동생들의 아침 세수부터 점심식사 챙기기 저녁 무렵이 되면 집 안팎을 쓸고 닦는 청소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짬짬이 아이들과 노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부모님이 집을 비우시면서 빨래거리나 장독에 물을 채워야 하는 숙제거리도 있을 터였다. 헛간에 있는 멍석을 마당에 펴고 자루에 담아 놓은 깨나 콩 등을 말려라 아니면 펴놓은 것들을 비가 내리면 “거둬들여라”라고 하는 것들도 많았다. 이밖에도 비가 오면 빨래를 거둬들여야 하고 장독대 뚜껑도 닫아 놓아야 한다. 돼지라도 키우고 있다면 끼니때마다 먹이를 주는 것도 잊지 말도록 주의를 주고 출타를 하셨다.

매일 이런 비슷한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다양한 성격인자 중 유독 까칠한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자연속에서 4계절을 지나고 온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누이의 성정은 따스함으로 남는다. 또한 그 얼굴과 말투엔 온통 따스한 말들이 가득 담겨 있다. 어른이 된 누이의 마음속 한 구석에 가득했던 격렬한 내분은 읽어내지 못하지만 그래서 평온했던 누이의 얼굴이 지금에 와서는 더 속상하다.

산다는 게 고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 주도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지시와 간섭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것 때문은 아닐까?

젊다는 것 꿈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강한 햇살에 데지도 않고 무거운 여름비에도 눌리지도 않은 어느 방향으로나 자라날 가능성을 가진 싱그러운 연초록 잎일 것이다. 반대로 젊지 않다는 것은 뜨거운 여름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험상궂은 장마를 거친 억세고 단단한 짙푸른 잎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젊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가 젊다는 것으로 설명하기는 복잡하다. 세상에 덜 물든 그래서 세상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꿈이 가득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한 젊은이는 무슨 꿈을 꿀까? 무엇을 이루려는 것보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기에 피어나자마자 강한 햇볕에 그을리고 지쳐 말라버리지는 않았을까?

빵모자를 쓴 아빠를 뒤에 두고 흰색 폴라 티에 멜빵치마를 입은 여자애와 아주 평범한 남자애 사진이 한 장이 진열장 속에 놓여 있다. 아마 세월이 흐르고 나면 누가 누구인지 분별해 줄 이도 없을 것 같다.

그림을 잘 그렸던 누이!

내 어린 시절 누이는 쪽머리를 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산과 들에서 나물을 캐는 처녀들의 모습을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그렸었다.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고, 수제비를 만들어 주었던 누이의 기억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많이 넣어 솥단지가 과열됐다고 핀잔하던 누이

아무 말이나 나눠도 별 흠 없이 받아 주던 누이

교회주일학교 교사로 아름다운 말씨를 뽐내던 누이

꿈이 일상의 행복으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으련만

꿈은 가족 틀 안에서 하나씩 깨어져나갔다.

어른들의 말로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가 이유였었지만 결국 누구를 잘되게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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