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교사생활 하기가 힘들었던 때가 없는 것 같다. 오랜 경력의 교사나 현업에서 은퇴하신 분들은 쉬웠던 때가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던 적이 있느냐라고 하지만 현실이 마주한 문제들은 태산과 같고 해결할 방법들은 각자도생정도이니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교사직종의 심각한 여초현상도 한몫을 한다고 하지만 분명히 2000년대 초보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역시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극대화되었고, 각각의 권리가 크게 신장되었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방대해졌고 공고육의 가치를 폄훼하는 일들은 더 발생하고 있다.
분노를 참아내지 못하는 분노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많고 학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가 선생님들에 비하여 대폭 올라가 있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사람도 많고 사회를 적대시하는 사람 또한 많아졌다.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달리 더 특별한 훈련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이러한 현상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군사부일체라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도록 강요받았다. 또 어리숙해 보이는 나와 같은 성향의 아이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지금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왕따나 셔틀이 될 확률이 높겠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 다루기 편한 아이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교권이라든가 학생권리라든 하는 문제는 하등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내가 지금 태어난다고 해서 뭐 특별하게 학교생활을 하며 선생님에게 부담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나에게도 학교생활 16년을 통틀어 정말 이상했던 기억이 한 점 남아있다.
그 이상한 분과의 조우...
물론 공부 잘하고 학교를 방문을 열심히 하는 부모를 둔 학생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많지도 않고 딱 한 분의 선생님이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지 싶다. 어리숙하지만 나에게도 듣는 귀가 있어서 그분이 담임을 맡기 전부터 그분에 대한 소문은 가끔 듣는 터였다. 또 우리 반 학생 중 누구와는 친척관계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해당 선생님은 과학 주임을 담당했다고 교무실에 가면 업무분장표와 함께 걸린 사진을 본 적도 있다. 그분은 교장선생님이 주로 기거하는 학교 관사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그러므로 그 선생님의 아이들은 학교를 제집처럼 여기며 지내는 것 같았다.
여학생들에게 초경이 많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오듯 남학생에게도 발육상태에 따라 성장이 빠른 아이도 있다. 물론 늦게 입학해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들어오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당시의 시선으로 보자면 정말 초등학생 같지 않은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성을 과감 없이 이야기하고 남성의 생식기 주변에 검은 털이 보슬보슬 나있다. 초등학교 화장실이라고 하는 곳은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가림막도 없어 누구나 서로의 것을 가감 없이 살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오히려 드러내놓고 오줌을 누는 아이들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유별나게 내성적인 나는 여자 아이들과 말 한 번 하지 않고 지냈다. 물론 남자아이들과도 별반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물론 특별히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도 아닌 데다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있어 의기소침했을 수도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집에서도 있는 듯 없는 아이였고 학교에서도 그러하였다. 그때 성장이 빨랐던 남자아이들은 바닷가 근처에서 사는 아이들이어서 외모에서 강인한 인상인 데다 몇몇 아이들은 키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한 뼘 이상 컸다. 외관의 드셈과 억센 말투는 공격적이어서 어리숙한 상대를 쉽게 제압했다.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혹 알고도 있는 듯한데 어느 날 반대항 축구시합이 있었는데 어느 어느 친구를 조심해라 하는 것을 보면 분명 특정한 아이들의 행동양식이 관찰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심약한 아이들에게는 그런 압박이 고역이었다. 연필 깎기 칼로 책상에 금을 긋고 팔꿈치나 물건이 자기 자리 쪽으로 조금이라도 건너오면 물건을 압수하거나 팔을 그어버리겠다는 험한 말을 험한 얼굴을 하고 내뱉는다. 방과 후 귀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건너야 하는 다리에 그런 부류의 아이 여럿이 모여 있으면 덜컥 겁이 난다. 지나간 아이들에게 통행세를 걷어가는 모습도 심심치 않았다. 이건 뭐 그 당시 아이들이나 지금 아이들이나 심성이 고약한 아이들은 항상 있어왔는데 선생님들도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 선생님들은 선생이라는 직업 하나만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는데 실제 그들이 존경할 만한 것인가는 선생님마다 달랐다. 그러나 대부분이 괜찮으신 분이라고 기억된다. 유독 한분. 그분만이 참 이상한 선생님이 다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기억이 진실하다 할 수 없으니 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당시엔 학교에 책을 파는 장사들이 많이 왔다. 동화책을 팔거나 퀴즈 관련 책을 팔았다. 물론 이런 류의 책들은 강권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수업을 사용하거나 휴게시간을 이용해 책을 설명하고 주문을 받았다. 참고서류의 책은 달랐는데 이 부문은 읍내의 서점에서 사람이 와서 요청을 했는지 교학사나 동아출판사의 문제집을 강권했다. 그 선생님은 그 문제집으로 수업시간이 문제풀이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문제집을 풀라 하고 본인은 다른 잡무를 했는지도 몰랐다. 수업목표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수업시간을 때우려고 준비한 문제풀이 정도다.
문제집을 준비해서 학습시간에 이용하자고 해서 부모님에게 부탁해 읍내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 온 적이 있는데 다음 날 그 선생님은 해당 문제집을 들먹이며 같은 문제집으로 통일하도록 하고 네가 가지고 있는 문제집은 집에서 풀도록 해라 한다. 부모님이 구해 온 것은 교학사 문제집이었고 우리 학급은 동아출판사의 문제집으로 통일해서 문제를 풀었다. 그 문제집을 푸는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시험을 보는 시간이었는지 선생님은 학급의 선생님 전용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날 학생의 아버지가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자기 아들 곁으로 가 시험문제 푸는 것을 도와준다. 정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아니었기를 바란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 전체에게 반바지를 입고 운동장을 돌라했다. 반바지가 없는 아이들은 팬티차림으로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예전에야 팬티를 입지 않고 등교하는 일도 많았다. 팬티를 입지 않아서 바지를 못 벗겠다고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친구의 괴춤을 잡아 벌리고 바지 안을 들여다 보며 팬티를 입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시절 기억에 많이 자리한 선생님은 그 후 대전으로 전근했다. 그 얼굴 등이 아직도 선명하다. 수업 내용이 좋았던 것은 없고 이런 이상한 기억들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