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애가 뭐라 할까 봐 일어서지 못했다.

by 이상훈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학교 가기를 싫어했는데 난 참 바보같이 학교를 그렇게 열성으로 다녔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등 12년 내내 결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 2학년 때는 나의 하자 없는 출석에도 불구하고 출석표 동그라미 위에 각개표가 그려졌다. 나의 소심함에 의해서이고 몸이 많이 아팠던 담임이 적극적으로 출석부를 기재하지 않아서였다.

“결석 없이 출석한 아이들은 일어서라.”

이것으로 출석부 참사가 시작된 것인데 나의 당당하게 외치지 못하는 소심함이 불러온 참사기도 했다. 참 수줍음이 한없이 많던 시절이었다.

박신양과 김정은이 주연한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김정은에게 했던 말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너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저 남자가 내 남자다.

저 사람이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 “라고 박신양이 [파리의 연인]에서 김은정에게 쏟아냈던 말이 딱 심정과 어울리는 말이었다.

왜 온전히 출석을 했다고 말을 못 하냐고 말이다.

그런데 실은 그것을 입증해 주는 것은 담임선생님의 몫이다.

2학년인 이때 담임은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은 학생들은 스스로 일어서게 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일어섰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반 여자애 중 덩치가 큰 아이가 날 보고 결석을 했다며 네가 왜 일어서느냐 했다. 그녀의 몸집에 위력을 느꼈는지 급 의기소침해졌고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는 자기 일도 아니면서 남의 결석 여부를 심판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수줍음 많은 숙맥 같은 성격은 남의 지적에 쉽사리 자기 몸을 위축하게 했다. 나의 결석 사건은 돌아가신 부친이 직접 찾아가 정정을 해 놓기까지는 결석으로 정정되어 개근상을 받지 못하는 비극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도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여기에 더 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그 선생님은 가정 통신문에 주의가 산만함으로 악기를 사주는 것이 좋겠다는 글을 달기도 했는데 내가 산만한 것인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집중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지적을 당할 정도인가 싶다. 그 애가 할 줄 아는 것은 책이나 읽는 아이였는데 어디서 그런 산만한 기운을 느꼈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분은 몸이 더 안 좋아지셨는지 부쩍 자주 학교에 결근을 하면서 어느 날인가는 교실 구석에 모기장을 씌운 옹기 항아리를 가져다 놓고 아이들에게 그곳에 오줌을 누도록 했다.

예전 교실 전면을 그려보면 교탁과 선생님 전용 책상과 의자 그리고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칠판 밑으로 선생님이 올라서서 수업할 수 있도록 20센티미터 높이의 나무무대가 있었다. 칠판 좌우로 우리나라 지도와 수업시간표 등이 붙여져 있기도 했는데 그 수업시간표 그림 밑으로 작은 항아리 하나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여자아이들도 함께 있는데 그곳에 오줌을 눈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다른 반 선생님이 담임을 대신해 오줌이 필요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고 오줌을 누면 청소 당번에서 제외시켜 주기로 한 다음에야 몇몇 아이가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그곳에 오줌을 눋자 여러 아이들이 여학생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줄을 서기까지 한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기억하는 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