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람이 차다.
그날도 방문 문풍지는 귀신 소리가 요란했다. 새벽녘은 원래 고요한데 말이다. 이런 날씨에는 더욱 이불 밖을 벗어나기가 싫다. 방바닥 장판 틈 사이로 짚 불 냄새가 새어 나오고 온기라도 올라오면 몸은 더 따뜻한 곳에 몸을 비볐다.
문창호지가 여명의 빛을 받아들여도 눈보라는 마루까지 들이닥쳐 신발안에도 가득 눈을 쌓아 놓는다. 눈바람은 45도 각도로 눈송이를 땅바닥에 내리꽂는다. 그러다가 원을 그리기도 하고 땅바닥을 때리면서 눈 가루를 먼 곳으로 실어 보내기도 한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 가기는 더 두렵다. 푸세식 화장실에 바지를 내리고 앉으면 찬바람이 엉덩이를 타고 올라 등허리를 더 움츠리게 했다. 일을 보고 울타리를 벗어나자마자 눈보라는 더욱 맹렬하게 온몸에 달려든다.
두꺼운 나일론 양발의 발끝은 시림으로 가득해 발가락을 꽉 웅크려 트려 보기도해보지만 그 시림은 발을 가만히 지면을 딛고 있는 것만으로 통증이 되었다. 양발을 한 번씩 교차하면서 한 발로 다른 발등 위를 꾹꾹 눌러본다. 어서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능사이기는 하다.
새벽에 방문 밖을 나서면 온갖 사물이 눈과 얼음에 갇혀 있다. 담벼락에 걸려 있는 가을무도 눈이불을 덮고 꽁꽁 얼어 서로 붙어 있거나 달그락 거리며 눈바람에 정신을 놓아버렸고 어젯밤 볏 가마 위에 올려놓고 깜빡 잃어버린 토끼먹이용 당근과 잎사귀도 하얀 서리를 뒤집어쓴 채 차가운 냉기를 발산하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이다. 꺼내 먹지 못할까 우려하여 부엌에 들여놓은 김장김치 단지 안에서도 동치미나 배추김치가 모두 한 몸이 돼 아침 상을 차리기도 고역이었을 듯싶다.
어제 눈길을 뚫고 동네에 내려온 생선장수에게서 산 동태 상자도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동탯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자 안의 동태 전체를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야 할 정도이다.
사람이 이러할 진데 집에 키우는 가축들의 여물통도 장난이 아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물과 돼지 밥을 주어도 즉시로 해치우지 않으면 곧바로 얼어버려 먹기 힘들다. 소 등 위에는 멍석을 덮어주고 돼지우리는 보온성 좋은 짚으로 바람막을 만들어 줘도 그 해 겨울의 추위를 감당해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으니 하늘을 나는 짐승도 땅 위를 거니는 짐승도 먹을 것이 없다. 눈을 헤짚어 보아도 모든 것이 서로 엉켜 붙어 떨어질 줄 몰라 온 힘을 다해도 눈곱만 한 씨앗 한 톨 얻기 힘들다. 그러하니 온종일 하늘은 기러기와 청둥오리 떼들로 시커멓다.
눈앞을 가릴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은 추위와 싸워야 했다. 당연히 부모님들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왜 그리 추웠을까?
세수를 하고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달라붙었던 것도 사실이다. 집집마다 위풍이 심해 방 안에서도 코끝이 냉랭하다. 어떤 집은 방한모를 방안에서도 쓰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변변하지 않은 입성에 추위까지 더 하니 몸을 쭈욱 펴보는 것도 쉽지 않다. 털실로 짠 장갑은 구멍이 숭숭하니 보온성이 전혀 없다. 장성한 아이들이 있거나 머슴을 둔 집들은 머슴이나 장성한 아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사랑과 안방에 불을 땐다. 아침 일찍 생활용수로 쓰이는 물을 데우기 위한 것이고 아이들이 자거나 집안 노인들이 기거하는 방에 보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리라. 저녁 늦게 까지 군불을 지펴도 새벽 한두 시를 지나면 방안은 사람들의 체온만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던 시절이다.
그 겨울
북풍한설이라 하지 않던가!
남쪽을 향한 발걸음은 바람이 밀어주는 에너지로 비교적 수월하게 친구를
찾을 수 있지만 북쪽을 향하는 걸음에는 족히 한배 반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