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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May 13. 2024

알레르기 추억

최근 들어 더욱 봄마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보조제 탓에 눈의 가려움증은 조금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는데  몸 안에 무엇인가 들어온 듯 재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코안의 점막은 얇아지고 콧물도 계속 생겨나네요. 코를 풀 겸 세수나 한 번 더할까 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침대 위에 눕습니다.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된 스마트 폰을 켜고, SNS에 들어온 사진들을 봅니다.

비도 내리고 일요일인 내일은 성당 봉헌식이 있어 아침부터 바쁜 관계로 오늘 고등학교 모교가 있는 지방에서 열리는 동창회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 사진을 열어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고등학교 기수별 동창회는 상하반기에 각 한번 그리고 연합동창회 1년에 한 번 선후배를 모시고 개최됩니다. 가급적 참여하고자 하나 시간 제약이 많습니다. 그래도 평균적으로 1년에 한차례 정도 참여를 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SNS에 동영상도 올라오고 다양한 사진들이 넘쳐 참여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40대였던 시절엔 지금의 눈가려움이 단순히 눈병인줄 치부하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눈에 넣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안과를 다니다 보니 무려 2년간 같은 날짜에 병원을 방문한 흔적이 있더라고요. 참 특이하다고 만 생각했는데 이 가려움증이 알레르기구나 하고 판단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알레르기 눈병은 밤낮의 길이가 같은 하지 무렵까지 계속되었던 같습니다. 그러다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최근 몇 해 동안은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알레르기를 잊고 지냈는데, 올해는 처음 고통을 겪는 듯 더 유난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알레르기를 약하게 겪고 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시절부터 천안삼거리의 느티나무에서 하얀 꽃송이가  날리던 시절부터 알레르기는 있었던 것 같네요. 그 무렵이면 당연히 소나무에서 날리는 송악가루도 함께 날았으니까요.

기억을 더 연장시켜 보면 예전에는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둬 논의 물 위에 논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노랗게 송악가루가 채워졌었다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송악가루가 지금은 노상에 세워둔 차위에 한가득인 상황이지요.

그 시절 초여름이나 늦봄 바람의 이동에 맞춰 특히 저녁나절에는 논 물 위에 물결이 잔잔하게 일어났지요. 그때는 그 물결이 춥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 물결은 무슨 큰 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저강도의 햇볕과 아직은 찬 바람으로 노출된 팔등에는 소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물결이나 송악가루는 그냥 저녁 무렵의 냉기를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 빈집 느낌 뭐 이런 느낌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겨울이 아님에도 손에 닿는 무엇이 던 지 다 시리다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논 물 위에 잔잔하게 일던 물결과 송악가루에서 문득 알레르기와 연결과 과거의 추억에서 그것이 돌출되고 있네요. 내가 아니면 누구도 상관성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초여름이었나 늦봄이었나 아무튼 어린 시절의 그 바람과 논물 위에 배달되어 온 송악가루 그리고 잔잔한 물결은 미묘한 슬픔과 결을 같이 하네요.


저녁 무렵 석양 햇볕에 반짝이는 그 물결은 모내기에 번잡해진 탁했던 논물과는 결이 다르고 깔끔했습니다. 논물이 다 같은 논물이 아닌 것이죠. 여름날의 논물이 온갖 수생식물로 덮여 있고 따뜻한데 반에  쟁기로 갈아 놓고 물을 대어 놓은 논에 가둬 논 물은 정말 물색이 투명합니다. 논 바닥에 움직이는 각종의 생물들을 다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 수생 곤충에는 물방개나 소금쟁이가 있었던 같습니다. 어쩌면 물이 너무 맑아 아침 녘 이슬과 같이 쨍하고 소리 날 정도로 투명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물 위에 곤충들의 헤엄침으로 생겨나는 파동도 보일 정도이니까요. 그리고 물의 투명도를 높이는 것이 물의 온도인 듯한데 물의 온도가 낮을수록 물 분자 내부에서의 움직임이 적어서 인지 더 고요하고 맑아 보입니다.


알레르기가 어느덧 이렇게 나의 기억을 논물 위에 까지 가져다 놓는 것을 보면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묘한 흥분도 있네요. 지금도 그 차가운 느낌이 손에 전해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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