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두과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30여 년을 근무한 이가 은퇴 기념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쏜 살 같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매일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고 앞으로도 주욱 같이 일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은퇴라니요. 오늘 보낸 시간이 이처럼 소중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분이 처음 입사할 때가 기억이 납니다.
그분은 요즘과 같이 인디자인이나 쿽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편집이 이뤄지기 전에 사식(사진식자)을 만드시는 분인데 정년을 맞을 때는 회원개발 관리 업무를 하셨지요.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매체 발행에 있어서 월간지를 비롯하여 신문 등 매체와 간행물 대부분은 본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진설명이나 캡션, 제목, 설명 제목 등 크기가 다른 글자는 모두 사식을 쳐서 만들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편집기자를 하기 전에는 이 단어가 뭐지 하면서도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방송프로그램 하단에 사식 아무개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서 사식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사식과 다른 가 보다 정도였습니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기사 본문만 생성하던 컴퓨터는 본문서체와 급수 이외에는 제목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서체가 조악했습니다. 서체의 종류도 명조와 고딕 등 몇 가지에 그쳤고 여기다가 급수(글자 포인트)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서체가 깨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사진식자는 글자크기를 100급으로 키워도 아주 깔끔하게 선체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서체의 종류도 디나루체, 윤서체, 궁서체 등 다양한 서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편집기자에게 있어서 사식은 편집 공간에 맞는 글자 수와 글자 크기는 당시에 아주 중요했습니다. 기사의 중요도를 분석해 헤드라인, 좌탑, 중탑 등 본문 레이아웃을 끝내고 나면 거기에 맞는 제목을 뽑는 것은 편집기자들에게는 기사를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큰일이었습니다. 특히 최적의 눈에 확 띄는 제목을 뽑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지요. 어제 헤드라인과 오늘 헤드라인이 당연히 같을 수는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약간은 선정적이어야 칭찬을 받았고 사자성어로 마무리하면 더 효과적이고 구독자의 눈에 띄기 쉬웠습니다.
편집기자가 제목 란에 들어갈 주제와 부제를 사식으로 요청을 할 때에는 “몇 급으로 장을 얼마를 주고 해 주세요” 하면 그분은 정말 누구보다 빠르게 벼락같은 속도로 인화를 해 가지고 옵니다. 어쩌다 급수가 맞지 않아 공간을 넘쳐나면 다시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미안할 때도 많았는데 그분은 번거롭다는 표정도 짓지 않으시고 잘 협조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컴퓨터 글자포인트처럼 다양 않았는데 그래서 글자크기를 말하는 급수 관련 자(스케일)도 있었답니다. 자를 통해 해당 제목 란의 크기에 맞는 글자 수와 글자 크기를 맞춰보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눈감고 맞춰 주는 것도 재주면 재주였지요. 시간을 단축해 매체 발행속도를 앞당길 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그때는 그런 일들이 참 중요하다고 여기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처럼 세상이 바뀌고 모든 것을 컴퓨터로 하던 시대가 되자 그분의 역할도 바뀌었고 다른 업무를 하다 엊그제 정년을 맞으신 거지요. 그분도 그분이지만 나도 무엇이 나를 지금 여기까지 이끌어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면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열심히 했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특히 과거를 공유할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가는 것이 더 큰 슬픔입니다. 대개 영광스러웠던 것은 모두가 기억해 주지만 고난의 시대를 함께 했던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갖는 유대감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한 시절을 공유하고 어려움을 같이 했던 이들이 많을수록 어쩌면 위안과 축복일 수 있습니다.
나이를 웬만큼 먹고 난 요즈음 돌이켜 보면 일에 대한 충실도나 능력보다는 결과적으로 돈을 얼마나 더 잘 모았냐만 평가되는 것 같아 아쉬움 혹은 씁쓸함이 참 큽니다. 이해는 하면서도 과거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의 성실했던 과거 능력이 얄팍한 재주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혼신을 쏟아 제목을 뽑고 글자 수를 맞추어 눈에 띄는 헤드라인을 만든 것이 하찮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특히 그분이 당시에 했던 식자를 급수에 맞게 렌즈를 조정하여 빠르게 치는 일이나, 눈감고 제목란 크기에 맞게 서체와 크기를 알아내는 것이 엄청난 재주처럼 보였고, 출판에 있어서 그런 직업군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경우에도 한 줄의 제목을 뽑기 위해 몇 시간을 머리 싸맨 적도 많은 것 같습니다. 늘리는 것보다는 줄이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그 당시 많이 깨달았죠. 어쩌면 소설을 쓰는 것보다 시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각자 열심히 살아왔는데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을 아끼거나 저평가를 받게 되면 우울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서로 열심히 한 결과로 자식이 나름 성과를 내주거나 가정 전체가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하면 기쁜 느낌이 드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가정은 어쩌면 가족 구성원 간의 지나친 친밀도로 인해 서로 더 많이 요구하고 다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