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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처음 가본 해수욕장에 대한 기억

by 이상훈


서해의 바다는 잿빛과 짙은 청색의 2중주다. 갯벌이 있는 해안선에 가까울수록 잿빛의 뻘색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가 처음 가본 해수욕장은 태안에서 가까운 만리포해수욕장입니다. 예전에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을 당시에는 여름 바캉스철만 되면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만리포”라는 행선지가 붙어 있었지요. 남녀 모두 긴 머리와 청바지 그리고 다양한 컬러의 티를 입고 카세트테이프 라이오나 기타를 들고 삼삼오오 모임을 이뤄 해수욕장으로 찾는 이들이 버스에 차고 넘쳤었습니다. 가보지는 못하고 친가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 차 안 가득했던 소리와 움직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는 버스 차장이 동반해서 다녔는데 휴가철만 되면 버스가 미어터졌다 하는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에어컨 가동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더우면 창문을 열었던 기억이 있고 여기저기 창문마다 손이 밖으로 삐죽삐죽 나와 있는 것도 자주 본 듯합니다. 그 당시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시려면 여러분들이 예전 사진 봤을 법한 붉은 윗도리에 나팔바지 도끼빗을 뒷주머니 꽂고 있는 청년들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그런 선남선녀가 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바다가 처음이 아니라 해수욕장이 처음이었네요. 제가 살고 있던 지역에는 지금은 방조제로 막혀 있지만 아산만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던 지역이고 많은 포구를 가지고 있던 지역이었으니까요. 어쨌거나 제가 해수욕장을 갔던 것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지 싶습니다. 충남 태안(만리포, 연포, 천리포가 있는 지역)에 있는 숙부 댁에 갔다가 짐을 풀자마자 숙부가 같이 갔던 고종사촌형을 데리고 만리포해수욕장에 가본 기억이 최초의 해수욕장 관련 기억입니다. 그곳에서는 고모네가 가족이 휴가철을 이용해 여름장사를 했던 기억입니다.



시골뜨기가 아닌 점 놀아본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보였던 곳에서 아침은 코펠에 밥을 해 호박잎에 쌈을 싸 먹었던 일도 기억 저편에서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처음 본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만리포 해수욕장을 상징하는 배지와 페넌트 그리고 도로포장이 안 된 임시 정류소를 무던히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들락거리던 직행버스들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아치 형태의 조형물도 기억이 나네요.

짠 바닷물에 검은색 타이어 튜브를 타고 놀다가 뒤집어져 염분 가득한 바닷물을 흡입해 고통스러웠다거나 멍게를 초장에 찍어 맛본 달착지근하고 시큼한 맛의 신세계도 잊지 못할 만큼 짜릿했습니다. 그때 숙부와 고모부님은 별도의 텐트 안에서 소라나 멍게를 안주로 소주를 찌그리기도 하셨지요.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거닐어 보면서 이쁜 모양의 조개들도 많이 주웠다. 소독을 하고 끓는 물에 데쳐서 말렸어야 하는데 그냥 뒀다가 심한 고린내로 대부분 학교 수돗가에 버렸던 기억, 또 그것을 주워 갔던 친구 모습도 떠오릅니다.



우리 시골에서는 거의 신지 않던 쫄쫄이 슬리퍼도 그때 처음 신어 봤을 것입니다. 텐트에서 일박을 했는데 방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마도 아침이슬이 텐트 천정에서 떨어졌던 것 같고 밤새 수평선까지 사라졌던 바닷물이 새벽녘에는 모래사장과 도로를 분리하기 위해 쌓아 놓은 방파제까지 밀려왔던 바닷물자국도 보였습니다. 그때의 파도소리는 무슨 빗소리처럼 들려 비가 밤 새왔나 하는 생각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모터보트를 타는 무리와 해변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의 바다 위에 “수영금지” 위험표시를 한 것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 선블록 같은 화장품은 못 보았던 같습니다. 뭐 시골에서 겨울에 얼굴에 바르는 크림하나 써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손이 트면 튼 데로 얼굴에 뭐라도 나면 난 데로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요.


예나 지금이나 해수욕장과 버스정류장사이의 노상에는 인근에 사시는 어른들이 호박잎이나 비듬나물 등 각종 나물류를 팔았던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아침 녘에는 지금도 그런 모습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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