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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by 이상훈

스프링이 달린 12장짜리 도화지 화첩과 굵기가 남다른 두께의 크레용. 아마 굵기가 남달라야 부러지지 않고 끝까지 소임을 다할 수 있어 값이 좀 비싸지만 사주지 않았을까!

너의 가격은 2백 원에 케이스 단단하고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너의 1/2 크기이고 허접한 케이스가 전부야. 그래도 넌 가격이 50원 밖에 안 하니까. 너로 할게. 그게 선택기준이 아니었나 싶다.

부모님이 나에게 학용품을 미리 사준 적도 있지만 그건 동생을 위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자기가 유리한 것만 생각한다고 한참 어른이 된 나도 내 부모가 당시 나에게 무얼 해줬다는 기억이 없다. 똑바로 이야기한다면 낳아주고 모든 것을 주고 그랬는데 말이다. 그랬음에도 나의 기억 속에서는 “나의 것은 내가 알아서 샀을 뿐이다.” 밖에 전혀 기억이 없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 부모는 나에게 왜 그랬을까! 타고난 재능은 있어 보였을 텐데. 누차 아버지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의 그림 일기책에 그려진 그림들을 동네 아저씨들에게 자랑하셨다.

물론 그림이란 것이 반드시 색을 입혀야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 짤을 보면 연필만으로도 얼마나 사진 같은 그림을 구현해 내는데 말이다.



그림의 도구가 무엇이 중하랴?

뭐 이런 생각은 나이 든 성인들이 세상을 알고 나서 하는 생각들이고 철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비싼 것과 싼 것 혹은 성능이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데 머물렀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 등만을 느꼈을 듯싶다.

초등학생 때 특히 나의 경우 70년대 초반 아이들의 그림 색에 대한 개념은 단색이 두드러졌다. 고학년이 되면 복합적인 색상 표현을 설명해주기도 했지만 저학년 때만 하더라도 특정 부위의 색을 복합적으로 입히려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얼굴은 살구색, 머리는 검은색 등으로 천편일률적이다. 그리고 사람얼굴과 입술, 눈 등이 비례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넓은 부위를 하나의 색만으로 칠하려니 힘이 들어가고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크레용 상자 안엔 성한 것보다 부러진 크레용들이 많았다. 크레용을 싸고 있는 얇은 종이도 금방 닳아 없어져 단지 크레용만 사용해 수업시간 중 그림 그리기를 했을 뿐인데 손톱과 손가락의 지저분함은 하루 종일 작업한 전문 화가의 손을 방불케 한 모습이다.

수업은 관성적으로 이뤄졌다. 초등학교 때 그림을 어떻게 그려라 어떤 모양으로 크레용을 쥐어라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기억은 없다.

그 당시의 책상은 녹색 페인트를 칠한 2인용 책상과 작디작은 나무로 제작된 의자였는데 자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가 짝꿍이 되면 생기는 불안처럼 반에 한두 명은 늘 그런 불안을 조장했다. 책상에 연필 깎기용 칼로 줄을 긋고 줄을 넘어오면 빼앗아가고 정말 저런 행동양식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너까지 부러지면 내가 가장 아끼는 색깔은 크레용 박스에서 사라져 버리니까. 혹시 너 때문에 새로운 크레용을 사게 될지도 몰라. 내가 가진 크레용에는 다 너의 컬러만 없단다. 초등학교시절 크레파스나 물감을 사용한 기억 많지는 않다. 크레파스와 크래용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파스텔은 가끔 아이들 가져온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부드러운 색감은 크래용과 큰 차이를 보였다. 크래용도 메이커에 따라 질감과 색상 구현력이 달랐다. 그 다른 점을 초등학교 시절에도 충분히 느꼈다.

내가 말썽 피는 아이도 아닌데 적어도 내 생각에는 아무런 행동에 변화가 없었는데도 부모님은 돈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림을 그릴 실력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인지 좋은 크래용을 사줬다는 기억이 없다.

동생들은 그 당시 꽤 괜찮은 축에 속했던 왕자표 크래용을 쓰기도 했는데 말이다. 내 기억이 오류일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특기활동만은 계속 미술반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주로 연필 스케치였고 스케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구도와 입체감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색을 넣는 것이 좀 아쉬웠을 뿐. 색감은 정말 감각이 필요한 분야이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에는 정말 책만 읽은 듯싶다. 특별히 활동적이지도 않고 다른 아이들처럼 추운 날 밖을 싸돌아다니는 것도 취미에 맞지 않았다. 그냥 아랫목에 이불 덮고 누워 책을 읽는 것이 시간 보내기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이솝이야기나 안데르센 동화집 그리고 위인전 등 학급 문고에 꽂혀 있는 것들은 모조리 읽은 것 같다. 뭐 딱히 공부도 타고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쪽도 아니었다.

4학년 미술시간이다. 그림물감을 도화지에 떨어뜨리고 입으로 공기를 내뿜어 추상화 정도의 그림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성격도 칼 같고 얼굴도 예쁜 여선생님이 다가와 구도와 색감 모양 등이 잘되었다고 칭찬을 하고 가셨다. 그런데 무엇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갑자기 뒷자리의 키 큰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맞지 않은 물감을 떨어뜨리고 입을 불어 엉망을 만들어 놓고 갔다.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아니 왜 잘 되었다니까 그림을 이렇게 했어” 하신다. 당시에 누구 때문이라고는 말도 못 하고 기분만 상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가 1학년 때에는 내가 사다 놓은 색종이와 풀이 없어져 찾아봤더니 내 뒤에 앉은 아이가 제 것 마냥 쓰고 있다. 뒷자리의 덩치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럼에도 학년을 달리해 가면서 교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는 늘 금상을 수상했다. 분명 그림에 소질은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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