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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추억

by 이상훈

페이스북을 보다가 “절구를 들고 서 있는 여인네”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절구 하면 "오언절구" 이런 생각이 먼저 들 텐데 그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그날의 절구질 소리는 떡메 치는 소리였고 계절적으로는 반딧불이 돌아다니고 아마 마늘밭에 마늘들이 어느 정도 자랐지 싶은 때였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가져온 폭죽으로 밤하늘에 불빛을 날려도 분주한 집안에 있기는 뭐 한 지 별빛이 총총한 밤에 나는 아버지와 마당을 지나 마늘 밭 인근에서 화약에 불을 붙이면 날아가는 그 물체를 가지고 놀았다. 내가 논 것이라고 보기는 그렇고 아버지가 불을 붙여 날리면 환호성을 지르는 게 그때 나였을 것이다. 제사를 지내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다. 그 후로 할머니 제사는 대구에 사시는 백부집으로 옮겨갔다.

페이스북 옛날 사진에 나오는 돌에 나무손잡이가 있는 절굿공이를 보니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미취학 아동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절굿공이는 그렇게 돌로도 철로도 나무로도 만든다. 여성들이 사용하기에는 무게상 나무절구가 제격이지만 사진의 것은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돌로 된 것을 들을 수 조차 없다. 나무로 된 절굿공이는 마늘 고추 등을 넣고 찌어서 김치를 담을 양념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강도가 센 마른 양념류는 찧기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무로 된 절굿공이는 아마도 떡을 만들기에도 적합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용도에 따라 나무로 된 거 쓰고, 돌로 된 거 쓰고, 철로 된 거 쓰고 그러지는 않았다. 나무절구통이 있는 집은 보통 절굿공이도 나무로 된 것을 사용했다. 무엇으로나 양념을 만들어 내고 떡을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다.

절구에 나무파편이나 돌가루가 묻어 나오는 것은 당연할 듯싶은데 정말 당시 기억으로 돌아가면 절구통 안은 얼마나 사용했는지 맨질맨질하여 파편이나 가루가 생겨날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울러 당연히 나무절구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돌절구나 쇠절구가 음식재료를 분쇄하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할머니 제삿날이면 동네 고모들이 호롱불 밑에서 전 붙이고 인절미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절구에 고두밥을 넣고 찧으며, 손에 물을 묻혀 떡메(절굿공이) 발라주는데 이는 찰기가 있는 고두밥이 떡메에 붙는 것을 막아 효과적으로 떡을 찢기 위한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지금은 분쇄기나 믹서기로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결하겠지만 준비하고 닦아 내는 것도 참 큰 일이었다. 어머니는 절구통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판자로 덮어 놓으셨다. 아마 어느 가을날에는 봉숭아꽃도 넣어 다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방앗간이 없었을 때는 떡쌀도 찧고 했겠지.

오늘 같이 파아란 하늘 마당 멍석에 고추가 널어져 있고, 한쪽에서는 콩이나 깨를 털어내는 작업이 한창인 그런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붕 위에 박이 달보다 더 크게 보이는 그런 날 오후 텃밭에서 솎아온 어린 뭇 잎으로 어머니는 김치를 담으신다. 그런 엄마보다 힘이 센 남자아이가 돌로된 절굿공이를 들어 마른 고추와 마늘 등의 양념을 찧는다.

“쿵쿵쿵”

어린 시절엔 먼 훗날이 그리 멀고 지루해 보이더니 이젠 지난 일이 엊그제 일같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 듦의 다른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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