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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by 이상훈

강해 보이던 사람이 비틀거릴 때 지적하는 사람이나 어떤 일을 다르게 했어야 한다며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사람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진짜 영광은 경기장에 있는 사람에게 있다. 땀과 먼지와 피로 얼굴이 얼룩진 그 사람 말이다

“It is not the critic who counts ; not the man who points out how the strong man stumbles, or where the doer of deeds could have done them better.

The credit belongs to the man who is actually in the arena, whose face is marred by dust and sweat and blood...”

<Theodore Roosevelt 미국대통령이 1910년 4월 23일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한 연설 중 >

누군가는 자존심 때문에 텍스트를 보면서 대중 앞에서 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해야 할 말을 다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느냐 그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누군가에게 정말 적절하게 문장을 다 구사하지도 못하고 한 문장을 다 전달하는데도 큰 애를 먹는 것이 나 자신이기도 하다. 그럼 뭐라도 들고 읽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건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몇 문장 되지 않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내려오겠다고 고집하지만 오히려 써가지고 간 텍스트대로 읽어 주고 내려오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좋지 않나 싶기도 하다.

과거에 보면 매번 행사 때마다 텍스트를 만들어 인사말을 대신하는 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마저도 시의 적절하지 않은 것도 있어서 약간은 조소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렇게라도 한 연습이 쌓이면서 그이는 지금 아주 자연스럽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요즘 아주 절기마다 적절한 날씨 비유를 들어 회의도 아주 매끄럽게 진행하는 이가 됐다. 그런데 비해 나는 아직도 우물쭈물 무엇을 전달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져 단어나 전달 내용이 좌충우돌이다.

무대는 본능적으로 연습된 본능이 표출되는 자리인데 그것은 어느 장소보다 몸에 익숙한 것만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 사위를 보는 집들은 술을 먹여 보거나 화투 등의 게임을 한 판 벌여 보기도 했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겉으로 꾸민 행동은 술자리나 화투 치는 자리 등에서 쉽게 본성이 드러나기에 말이다. 무서운 게 아무리 꾸며도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사용하는 단어나 태도 등에서 감춰진 것이 문득문득 묻어나게 된다.

본능이라고 하면 타고난 체질, 성향, 결정능력, 스킬 등을 모두 담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한다한들 타고난 재능이 없는 한 충분한 연습과 충분한 호흡량이 없으면 설사 강한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그것도 홀로 일 경우에는 더 더욱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보는 이들 특히 제삼자와 같은 이가 밖에서 보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한편 답답한 구석이 없지 않아 비난이나 비평을 하기도 쉽다. 그렇지만 비평을 하는 이도 본인이 무대 위에 선다면 여러 가지 장애로 자신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공간 자체가 긴장감이나 기대감으로 가득하고 그것을 무대 위에 선이는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럴 때는 보통은 괜찮은 호흡과 성대라 하더라도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목근육도 뭉쳐져 생각했던 것처럼 발성이 되지 않고 입안도 바짝 타들어 갈 뿐이다.


소리라라는 것은 입안의 충분한 수분과 목 근육의 부드러움 그리고 호흡의 기본이 되는 상체 근육의 편안함 등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무대 위에 많이 서 본 이들도 대부분 긴장감을 호소한다.

더구나 주변 상황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호흡은 짧아져 음 길이만큼 소리를 못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조금 반복되게 되면 무대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조급증도 나타나게 된다. 노래하는 본인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이성보다는 무서운 무대 공포가 자신을 빨리 현재의 위치에서 내려오도록 하게 만든다. 이성적으로는 무대 위에서 문제가 생기면 조절을 해 가면서 마무리를 잘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참으로 쉽지 않다.

그런 고로 무대를 평범하게라도 마무리하려면 위기 극복 능력이 본능으로 장착되어야 한다. 한 부분 틀렸다고 조바심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무대인 만큼 다음 부분을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자세가 기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변에 대한 컨트롤과 자신의 역량을 믿어 주는 것 등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들이다. 그러면 아마도 보통 수준의 마무리는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르지 않고 관객인 사람들이 무대 위의 상황은 모른 채 평소의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했던 유명인들과 비교하거나 자신이 평소 편안한 상태에서 해왔던 비교 하면서 다소 박한 비평을 여지없지 쏟아낸다.

삶을 짊어지고 자신의 무대를 이끌어 가는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런 고로 타인의 평가에 너무 좌고우면 할 필요는 없다. 삶의 영광이 본인 것인 만큼 스스로 이겨내고 본래의 실력이 무대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고 노력에 따른 박수는 후차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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