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여행을 위한 준비

by 이상훈

어린 시절 수확이 끝난 텃논에서 상여를 메고 운구 연습을 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상을 당한 집에서 준비한 신발과 수건을 챙기던 모습도 눈에 선하고요. 이제와 돌이켜 보니 이런 공동의 움직임이 개인의 죽음을 개인의 죽음이 아닌 마을 구성원 모두의 보살핌이었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더군요.

요즘 죽음에 대해 SNS 공지를 받아야만 알게 되는 그런 세태 속에서 아직도 상가(喪家)의 예법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아마 진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접 운구행렬을 본 적은 없는데 텔레비전을 통하여 마을사람들이 준비하는 죽은 이에 대해 예우하는 모습이 우리 시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마을 축제 같은 모습이었는데 살아계실 때 함께 했던 이들과 함께 죽은 이가 머무를 또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삶과 죽음이 그 시간만큼은 모든 이와 함께 공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습니다.

얼마 전 숙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갑작스러운 사고였던 만큼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을 준비하는데 많은 애를 써야 했고, 특히 죽음에 이르는 동안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 망연자실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러한 죽음이 이제는 일상처럼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이가 들어 약간의 치매기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하면 가게 되는 요양원의 경우 간호인력의 도움을 받는 시스템이 부족할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는 그 시간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지요. 망자의 가족들은 비보를 접하고 마지막 영면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망자가 교류를 했던 분들에게 조차 연락을 취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촌들의 모습이 당장의 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준비할 수는 없겠죠. 준비할 시간도 마땅치 않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이를 두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많은 죽음과 관련하여 그것을 대신 처리해 주는 병원과 장례식장, 화장장들이 우리와 이웃들의 역할을 앗아 갔기에 무얼 준비하다는 것은 상조에 가입하거나 납골당을 예약하거나 하는 정도입니다.


임종직전 체인스토크스 호흡을 하는 상황에서는 가족은 물론 친한 이들과 함께 죽음의 고통을 벗고 밝고 따뜻한 곳으로 고인이 떠나가도록 응원해야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차디찬 영안실에서 염을 할 때나 조우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어느 여성 분은 자기 남편이 집에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자기가 살아야 할 집에서 남편이 죽는 것을 견딜 수 없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도록 자식들에게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장례문화는 대부분 초혼은 사라지고 염과 발인은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상여를 메고 갈 때의 상여소리는 저장 파일에서나 가능한 모습입니다. 내 친구 녀석은 중학교 때 그 상여 나가는 소리를 부르기도 했는데 말이지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모두의 축복 속에 이루어지듯 우리가 세상을 떠날 적에도 힘겹게 보낸 삶을 뒤돌아 보고 위로를 받으며 돌아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내 삶이 나름 의미를 갖도록 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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