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먼 곳으로 물건을 팔러 다녔고,
집에는 나와 누이만 남았다.
우리는 솥에 김치볶음밥을 하기로 했던 것 같다.
불이 세면 밥이 타고 김치와 고기가 따로 놀았다.
반면에 불이 약하면 김치 냄새만 퍼질 뿐 윤기나고 꼬들꼬들한 볶음밥이 되질 않는다.
부뚜막 위에 앉은 누이는
밥주걱으로 솥 안을 골고루 뒤집어 섞어 김치와 돼지고기와 밥이 잘 어울리도록 볶고 있었고,
자욱한 연기에 연신 기침을 했고, 눈엔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푸라기를 넣는다.
짚을 우겨 넣어 불을 키우면 너무 세고,
짚 양을 줄이면 솥안의 온도가 적정하지 않았다.
내가 지피는 불은 언제나 과하거나 모자랐다.
그때 누이가 말했다.
“옆집 애는 불도 잘 때는데,
너는 불도 제대로 못 때고….”
지금 생각하면
못 때는 게 정상이었고
김치볶음밥을 안 하는 게 정상이었겠다.
그 무렵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 기억은 단순한 가난의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남았다.
불을 조절해야 했고,
연기를 만들면 안 됐고,
타게 해서는 안 됐고,
늘 적정선을 맞춰야 했다.
나는 그렇게
불을 관리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감정보다 먼저 조절을 배웠고,
욕구보다 먼저 상황을 배웠고,
자기 표현보다 먼저 균형을 배웠다.
이 구조는 삶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도
삶은 여전히 조절의 연속이었다.
자식 걱정, 돈 걱정,
그리고 이제는 아픈 몸까지.
아픔은 누구도 대신 겪어줄 수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더 조심스러워했다.
관계는 돌봄이 아니라
부담의 관리가 되었다.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내 정신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내 삶에는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나는 ‘올바름’이라는 말을 믿어왔다.
공정함, 배려, 조율, 중재, 양보.
그러나 그것이 신념이었는지
아니면 구조였는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공정하다”, “올바르다”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얼마나 자주
내 마음과 다른 선택을 말해왔을까.
이 지점에서 철학은 흔들린다.
윤리는 신념이 아니라 조절 기술이 되었고,
도덕은 가치가 아니라 갈등 회피 전략이 되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남이 힘들어하지 않으면 되는 삶이
정말 윤리적인 삶인가.
자기 소실을 전제로 한 평화는
정말 정의로운 상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