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 어린시절의 친구들

by 이상훈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가끔 초등학교 친구들 자녀 결혼식에 가서 느꼈던 감정이 더욱 그렇게 만든다.

좋은 부모로서 역할을 다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러질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동시에 품게 된다.


사람은 자라면서 배우고, 깨지고, 바뀌고, 다시 만들어진다.
한 시기의 장면만으로 한 사람의 전체를 규정하는 일은
한 계절의 풍경으로 사계절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의 인상을 쉽게 믿는다.
어리숙했던 아이, 말이 없던 아이, 뒤처졌던 아이,
늘 혼자 있던 아이, 눈치만 보던 아이.
그러나 그 모든 장면은 성장 이전의 스냅샷일 뿐이다.
그 아이는 아직 언어를 갖기 전의 사람이고,
아직 자기 선택을 해보기 전의 인간이며,
아직 자기 세계를 만들어보지 못한 존재였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바뀐다.
사랑을 배우고, 책임을 배우고,
실패를 통해 방향을 배우고,
상처를 통해 깊이를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는 법’을 배우면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성격은 본질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소심함은 배려로 바뀌고,
고집은 소신으로 바뀌고,
침묵은 사유로 바뀌고,
순박함은 품격으로 바뀐다.
사람은 그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번역되며 성장한다.

기억은 고정된 이미지지만,
인간은 유동적인 존재다.
과거는 한 인간을 설명하는 재료일 뿐,
결론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 사람이 아직 쓰지 않은 장들을
읽지 않고 책을 덮는 일과 같다.

사람은 계속 쓰여지고 있고,
계속 수정되고 있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은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니다.
기억은 근거일 수는 있어도,
판결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은 자라면서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은 보기에 따라 어쩌면 어리숙하고 순박하고 많은 형제들 틈에서 수더분하게 자란다. 콧물도 많이 흘리고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초에는 손수건을 달고 사는게 생활이었던 모습이다. 그랬던 아이들을 나이 60이 넘어서 보면 다들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속을 몰랐을 뿐이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겉모습처럼 그렇게 흐리멍텅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겉만 잰척하고 난척하고 해봐야 아이 키우는 어려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움이 인내를 키워주는 것도 성격을 바뀌게 한 것도 아닌 듯 하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기준을 세워주고 기도해주고 응원해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관이 적다.결국 부모로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지점이다. 흐트러짐 없이 살아내면 된다고 하는데 참 버겁다. 다들 인생을 처음 살아가는데 정답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같지만 자식 앞길을 알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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