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개똥지빠귀 또 왔어.”
할머니는 마당에서 콩을 고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아직 안 갔구나.”
“왜 맨날 팽나무에서만 먹어?”
내가 묻자 할머니는 잠깐 손을 멈췄다.
“거기엔 아직 남아 있으니까.”
“뭐가?”
“열매도, 기억도.”
나는 기억이 어디 달려 있는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팽나무에 가면 개똥지빠귀가 열매를 쪼아 먹는다.
열매는 작고 딱딱해서, 나는 먹다가 뱉었는데 새들은 계속 먹는다.
“저거 맛있어?”
내가 묻자 할머니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맛있어서 먹는 건 아니지.”
“그럼 왜 먹어?”
“지금 먹어야 하니까.”
나는 그 말이 숙제 같아서 싫었다.
그날, 하늘에서 그림자가 쑥 내려왔다.
나는 소리도 못 내고 팽나무 아래서 서 있었다.
“할머니, 저거 뭐야!”
“가만히 있어.”
할머니는 내 팔을 잡았다.
손이 거칠었는데, 꼭 잡아서 놓지 않았다.
“황조롱이다.”
“왜 저렇게 돌아?”
“기다리는 거야.”
“뭘?”
“실수.”
개똥지빠귀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까까지 딱딱거리던 소리가 싹 사라졌다.
“쟤네 왜 안 움직여?”
“움직이면 들키거든.”
나는 숨을 쉬는 것도 들킬까 봐 입을 다물었다.
황조롱이가 툭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때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옆으로 날아갔다.
“잡혔어?”
내가 작게 묻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살았네.”
“내일은?”
“내일은 모르는 거지.”
황조롱이는 결국 멀리 날아갔다.
팽나무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할머니.”
“응.”
“황조롱이는 나쁜 새야?”
할머니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배고픈 새지.”
“개똥지빠귀도 배고픈데?”
“그래서 세상이 조용하지가 않은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뒤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할머니, 팽나무는 왜 안 도망쳐?”
“나무는 도망 안 가.”
“무섭지 않을까?”
“무서워도 서 있는 게 나무야.”
나는 그 말이 잘 모르겠지만,
팽나무를 다시 보니 정말 가만히 서 있었다.
“할머니, 나중에 나무도 없어지면 어떡해?”
“그래도 새는 또 다른 데서 먹고 살겠지.”
“그럼 팽나무는?”
할머니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는 기억할 거다.”
“누가?”
“너 같은 애.”
그날 밤,
나는 창문 밖을 보다가 생각했다.
개똥지빠귀는 열매를 먹고,
황조롱이는 기다리고,
팽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가 묻는 것보다 조금만 더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