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다" 흔히 친하게 지내는 이웃을 보면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가족이란 것을 우리는 함께 뒹굴고 함께 먹을 것을 나누며 혈연관계로 이어진 집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더라도 함께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고 먹을 것을 나누는 과정을 배제해 버리면 법률상의 가족에 머무르고 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가족의 개념은 법률상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법률상의 가족 개념은 법률 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할 때 적용되는 것으로 입양에 의해 가족의 성원이 되거나 하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장황할까? 이야기인즉슨 가족이 법률적으로만 이해되면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이나 친근감이 사라지고 그저 2촌이거나 4촌이거나 하는 관념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개인주의가 급진전된 사회에서는 여기에서 오는 고통이 만만치 않다. 둘이나 하나의 자식만을 가진 4인이나 3인 공동체의 경우 가족 성원 간의 의견 조율 과정이 그리 심오하지도 않고 어려움도 크지 않다. 가족 공동체 성원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의 결정력이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대로 결정되는 일이 아주 흔하기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소가족 범위를 넘어서면 연습이 필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대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자랐다면 낯설지 않겠지만 소가족 중심의 생활 형태를 유지하다가 어느 한순간 대가족제도의 관습적인 가족행사에 맞추려면 연습이 약간은 필요하다.
이 연습인 가끔은 불편과 불평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런 불만은 당연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각자 지내온 세월을 돌아보면 자신이 어느 가족 구성단위에 속했었는지 그 가족 구성단위에서 얼마만큼의 영향을 행사했었는지에 따라서 이해가 달리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연습이라고도 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다른 환경에 소속되었던 시간만큼 1년에 몇 차례 보는 다른 가족들을 전체적인 틀 안에서 소속감을 갖게 하거나 이해하는 것 등에서는 시각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가족에게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하며, 흔히 타인에게 베풀어 주듯 그 이상의 것들을 참아 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요즘의 가족들의 경우 만남의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방문한 가족에게 내방을 내어 주어야 하고 음식을 제공해야 하며, 가족 공동체의 결정에 의견을 내고 조율해야 하는 것에 부담도 크고 어쩌면 가족이라서 서로가 상처를 더 받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가족이란 그래도 인류 역사가 말해 주듯 내 옆의 포근한 안식처이다. 가족도 완벽할 수는 없다. 조금씩 채워가거나 조금씩 비워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연습이 같은 유전자로 이어진 유전적 특성의 가족보다 더 중요한 시절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