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드는 요즘이다.
예전 일요일 아침 대표 드라마였던 "대추나무사랑 걸렸네"였었나 하여간 드라마에서 함께 백년해로하기로 했던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후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배우자에게 옷 한 벌을 제대로 못해주고 슬퍼하는 화면과 동시에 함께 평생 벼농사를 지은 횟수가 20여 회 남짓으로 길지 않은 것에 대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슬퍼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이야기 꾼이셨다.
친구분들도 자주 놀러 오시고 동네 사랑방의 초청도 끊이지 않으셨다. 술을 좋아하시기도 하셨지만, 길을 나서면 한 잔 하고 가라는 동네분들의 성화에 한 잔씩 걸치다 보면 그만 큼 어머니와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농번기가 지난 시골은 한가하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면 삼삼오오 동네 대표 사랑방에 모여 추렴으로 마시거나 새로 담근 술이 익어가는 집에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푸신다.
그 당시 인기가 많았던 “고춘자 장소팔 만담”에 등장하던 이야기도 있고 군대 시절 이야기, 옛날 옛적 이야기 그리고 시대를 알 수 없던 도깨비 이야기 등으로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 마을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셨다.
내 기억에 생생한 이야기 한 토막을 써보자면, 옛날 어느 마을에 참 말썽을 끊이지 않고 벌이는 탈 많은 손주 등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 손주 녀석이 얼마나 말썽이 심했는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는데 동네 호박이란 호박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꼬챙이를 박아 놓거나 하나씩 분질러 마당이나 두엄간 등에 던져 놓았고, 마당에 거적을 깔고 고추라도 말릴 량 늘어놓으면 작대기로 죄다 흩뜨려 놓기가 일쑤였다.
어느 날인가는 할아버지가 계신 사랑채 앞에 똥을 철퍼덕 싸 놓았다고 한다.
예전엔 화장실을 뒷간이라고 불렀는데 요즘과 같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대소변과 내용물의 발효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뒷일을 보는 곳이라고 해서 뒷간이라고 불렀다. 절에서는 해우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뒷간이 위치한 곳은 대부분 집 밖 외양간이나 잿간 옆이었다. 어두컴컴하기만 했던 뒷간은 밤에 가기는 더욱 무섭고 낮에 가더라도 귀신이 나올 양 음산하기만 하다. 그러니 과식으로 똥이 마려웠던 손자 입장에서는 한시가 급할뿐더러 집 밖에 있는 뒷간까지 갈 형편이 못돼 앞마당을 지나 할아버지가 계신 사랑채 마루 밑에서 일을 치르고 만 것이다. 며늘애야!, 얘! 며늘애야! 목이 터져라 며느리를 불러 똥을 치우라고 이야기했지만 부엌일이 바쁜 며늘아기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대신 일을 벌이고 별 일 없다는 듯 마당에서 꽃잎을 죄다 뜯어 놓던 손주 놈이 달려와 “ 할아버지 왜요”하고 여쭙는다.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이고 똥을 치우라고 나무라자 손주 놈이 농사일에 사용하는 삽을 가지고와 “할아버지 똥을 치라고요?” 하며 묻는다. 할아버지 “ 요놈 어서 똥을 치우라니까” 했단다. 그러함에 손주님이 삽으로 똥을 치니 철퍼덕 소리를 내며 할아버지 얼굴로 똥이 날아들었다는 이야기에 방안에 있는 모든 이가 박장대소를 한다. 그다음 이야기는 상상에 맡기겠다. 글로도 웃기지 못하니 나도 참 그렇다...ㅋㅋㅋ
모내기철 동네분들이 못줄에 맞춰 모내기를 하던 어느 날 동네 총각 놈이 “똥 쳐라” 하면서 손바닥을 펴 논물을 맘에 드는 처자에게 흩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