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면 무얼 할 수 있을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무렵에는 아이들이 학교 교실바닥을 직접 청소했다. 학교 청소를 시작하는 시점이 2학년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하러 학교를 다녔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습 난이도뿐만 아니라 청소의 난이도도 몇 배로 높아졌다. 학교 주변 풀 뽑기부터 잔디심기 그리고 어두컴컴한 재래식 화장실 청소 그리고 잔디관리를 명목으로 화장실의 분뇨 퍼 나르기 등 청소의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학교 건물은 허름하기가 그지없었다. 학교 외관은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된 판자 외벽에 일본식 기와지붕이었다. 나무로 된 외벽 안쪽엔 새끼줄과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을 채워 바람과 소음을 막았다. 흙은 벽체로써 안정감이 부족했다. 외부 충격에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백색의 회를 덧칠 해 강도를 높였다. 오래된 나무 창문과 교실문은 세월이 지나면서 위아래가 일시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등 열고 닫는데 많은 힘이 필요했다.
마룻바닥은 지면 위로부터 50 센터 미터 공간에 지지대를 대고 이어 붙였다. 50센티미터의 공간을 두고 많은 사건 사고가 빈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겨울이면 이 공간을 타고 들어오는 겨울 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60년대 이후 지어진 교실은 시멘트 골조에 바닥을 나무마루를 적용해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새로 지어진 교실 건물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사용을 했다. 나름 나무 외벽으로 지어진 교실보다는 한참이나 시대를 앞서갔고 안정감이 있었다. 그래도 청소는 마찬가지로 힘이 들었고 겨울이면 청소하기가 몇 배는 힘이 들었다. 물청소도 힘이 들고 아주까리기름으로 광을 내는 것도 광이 제대로 잘 나지 않았다. 겨울 철 빨지 못한 걸레들이 한가득 담긴 교실 뒤 청소함에서는 항상 지저분한 냄새가 끊이질 않았다.
장미꽃이 피는 5월이면 교육청에서 학교를 지도 감독하는 장학사를 매년 파견했다. 수업 중인 교실을 불시에 방문하여 무엇을 체크하는지 열심히 적어 가기도 했다.
장학사가 올 무렵이면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에게 아주까리기름이나 들기름 등을 가져오게 하여 교실 바닥을 윤기 나게 닦게 했다.
피마자라고도 하는 아주까리는 요즘은 잘 심지 않는 것 같은데 줄기가 대략 수수깡 정도이고 색깔은 진홍색이다. 잎이 팔손이 식물처럼 여러 갈래의 큰 잎을 가진 식물이다. 가을이면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나 갈색의 줄무늬를 갖은 종자를 맺는데 이 종자에서 나온 기름이 피마자유 즉 아주까리기름이다. 최근에 보면 피마자 잎을 나물로 해 먹기도 하는 것 같다.
청소는 우선 책걸상을 교실 뒤로 미뤄놓고 빗자루 등으로 먼지를 쓸어낸 다음 걸레에 피마자기름을 묻혀 바닥을 닦거나 마루 바닥에 기름을 흩트리듯 뿌려놓고 걸레로 밀어 닦아냈다.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면 마룻바닥은 유리를 덧댄 것처럼 반짝였다.
이 시절 내가 몰랐던 다양한 식물이 피미자 말고도 더 있는 듯하다. 학교 윗동네인 대포리나 소포리 등 포구를 가진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가끔 물에서 자라는 부들 열매를 가지고 와 자랑을 했다. 윗동네라고는 하지만 학교 하고는 적어도 4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학교를 갔다 왔다가 하기가 초등학생 입장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며 여러 가지 식물을 뜯어오거나 오는 길에 만난 뱀 등을 학교까지 장난을 치며 가지고 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부들 열매도 그중 하나였고 요즘은 꽃꽂이용으로 판매되기도 하는 것 같다.
5월이 되면 우리 집 장독대 옆엔 장미꽃의 일종인 월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진한 분홍색의 월계 꽃은 너무 다닥다닥 붙어 녹색의 잎을 찾아보아야 할 정도다. 월계 꽃이 담장을 전부 에워싸면 시골집은 말 그대로 꽃대궐이 된다.
장학사가 올 때쯤이면 선생님은 교실 청소에서 열외를 시켜주는 대신 집에 가서 월계 꽃 한 다발을 가져오게 했다.
꽃을 적당량 꺾어 주시던 아버지...
친하지도 그렇게 좋았다고 느끼지도 못했지만 그러함에도 그립다.
주여 돌아가신 이에게 평안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