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아궁이

by 이상훈

왠지 정겹다. 아궁이라는 단어.
기억 속의 것들은 왠지 그리움으로 포장되는 것 같다.
방구들을 따뜻하게 해 주고 밥과 요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 아궁이다. 요즘의 인덕션이나 레인지 혹은 오븐 같은 역할도 하고 보일러 기능도 겸하던 곳이다.


어렸을 적 새 운동화를 사주면 하늘 맑고 땅도 보송보송한 날에만 신어야 하는데 새운동화를 조급하게 신다 보면 비가 내려 진창이 된 날에도 자랑삼아 신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운동화는 비 오는 날 신는 장화 같은 역할을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다. 봄이 오기 얼마 남지 않은 겨울 아침이면 땅이 꽁꽁 얼어 운동화를 신어도 별일이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어서 해가 따뜻한 기운을 갑자기 토해내는 한낮을 지나면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얼었던 것들이 녹아 자주 진창으로 변했다. 그럴 때면 의도했던 아니던 운동화는 진흙이 운동화를 코팅하듯 덮어 버렸다. 신지 못하게 된 것도 된 것이지만 바쁜 와중에 일감이 또 하나 늘었기에 부모님의 꾸중은 불 보듯 한 것이었다.


요즘에야 운동화를 빨래방에 가서 세척과 건조를 해다가 몇 시간 만에 다시 신을 수 있었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온전히 햇볕과 바람에 의지하여 말릴 수밖에 없었다. 말리는데 족히 이틀은 걸렸다. 부모님의 꾸중이 무섭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또 신고 싶다는 욕심에 진흙 범벅인 운동화를 세척하여 빨리 말리려면 아궁이 불 앞에 늘어놓거나 부뚜막 온기에 말려야 했다.
운동화를 아궁이 앞에 말리다 보면 간혹은 운동화가 괨 목이나 앉은뱅이 방석에서 넘어져 불 가까이 다다르기도 하는데 이때 운동화가 불씨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도 한다. 새로 사서 하루도 제대로 신어 보지 못한 운동화가 말이다. 따뜻한 아궁이어야 하는데 그때의 아궁이는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운동화가 잘 못한 것인지 아궁이 안의 불씨가 잘못한 것인지 야속하기만 했다.


새벽녘 아궁이는 아버지 차지였다. 겨울날 새벽의 방구들은 가족들의 온기 이외에는 별다른 따스함을 얻어내기 힘들었다. 요즘 남자들이 식어가는 벽난로에 장작을 넣어 화기를 높이는 것과 같이 아버지는 큰 솥에 물을 부어 아침에 가족들이 사용할 온수를 만들 겸 방구들에 온기를 전할 겸 짚으로 불을 땠다. 대여섯 뭉치의 짚단을 한 주먹씩 넣어가며 타 오르는 불 앞에서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30분 이상의 불을 올려 보내야 방구들은 따스해졌다.

요즘 같이 따로 명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다. 아궁이 안의 불이 몸에 온기를 보내고 또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불의 합침이나 분열 그리고 부지깽이의 두드림으로 나타나는 재의 날림, 일정량씩 넣어지는 짚 한주먹.
그 일련의 반복 과정에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 어른들은 지금 보다 훨씬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었을 것 같다.
그 당시 태안의 친가에 가면 3개의 부엌 중 2개가 구공 연탄으로 방구들을 덮였고, 요즘 같이 메인 주방 역할을 하는 즉 요리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지는 부엌은 솔가지를 땠던 것 같다.

연탄불 위에서는 가족들 쓰는 온수가 만들어지거나 생선이 구워지거나 했다. 꽁치였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칼집이 그어지고 소금이 뿌려지고 석쇠 위에 얹혀 연탄불에서 구워지던 생선이 기억난다. 간혹 시장에서 주워온 조개를 구워 보기도 했다. 연탄 불 위에 올려져 입을 벌린 조개는 바다향 가득한 푸르스름한 빛깔의 육수가 한가득이었다.


부모님이 일 나가고 집에는 누님과 동생들이 있다. 겨울철 점심 무렵이면 대부분의 집에서 새롭게 밥을 하거나 수제비를 만들거나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무슨 요리가 되었던 무쇠 솥 위에서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이이던 어른이던 지금의 편리한 주방이 아니기에 화재가 나기도 쉬웠다. 부뚜막 위에 앉아 무쇠 솥에 요리 감을 넣고 불의 화력을 잘 조절하여 일정량의 불기운을 내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60이 넘으신 누님은 가끔 아궁이 불을 넣어 일정한 화력을 유지하도록 지시를 했다. 부모가 집을 비우면 동네 대부분의 집이 그러한 모양새로 식사가 마련되었다. 그러다 간혹 불기운이 세게 올라 오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 와 동시에 누구네 집 아이는 정말 잘하더라는 말과 함께.


요즘 많은 방송에서 먹방이 등장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요리 재료들이 아무런 부족감 없이 등장을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어렸을 적 아궁이에 구워 먹었던 것들이 생각난다. 고구마나 감자는 포만감도 주기에 구워 먹기에는 정말 좋은 식재료였다. 그것 말고도 6월 정도에는 마늘종이나 마늘잎을 구워 먹기도 했다. 벼가 익어갈 무렵엔 메뚜기를 구워 먹기도 했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조개류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콩고투리도 구워 먹기에 제격이다. 어머니가 사다 놓으신 흑설탕이 있으면 어쩌다 양재기에 설탕을 부어 넣고 달고나를 만들어 보기도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겨울철 산골 이모 댁에 가면 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그러면 송진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는 따닥따닥 소리를 냈고 송진 타는 냄새와 소나무 향이 부엌에 가득해졌다. 구들장 밑의 바람 흐름이 달라지거나 외벽으로부터 구들장으로 바람이 전달되면 아궁이 안의 불이 밖으로 토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 이는 머리가 그을리고 어느 이는 눈썹이 사라지기도 했다. 아궁이 바닥과 구들 장안의 연기 통로 간의 높이는 적어도 1미터 가까이는 되어야 연기 배출이 잘 된 것 같다. 연기 배출이 잘된다는 것은 방안의 구들이 골고루 열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궁이 하나마다에는 솥단지가 하나씩 걸려있다. 솥단지는 주로 무쇠로 된 것인데 어느 아궁이에는 밥솥과 국솥 2개가 걸어지기도 한다. 요리하는데 열을 많이 뺏기면 방구들의 온도는 당연히 떨어진다. 일정한 온도 이상으로 올리면 별 차이는 없겠지만 많은 연료가 소모되어야 한다. 이를 테면 땔감인 솔가지냐 짚이냐에 따라 화력도 많이 달라진다. 화력이 약하거나 세지 않고 일정한 화력이 필요한 요리는 아궁이 앞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져야 한다. 한창 나가 놀아야 될 나이인 초등학교 때에는 아궁이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야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겠지만 아이는 한시바삐 친구들 놀이에 끼고 싶었으니 말이다.
겨울철 엿이라도 고개 되면 그야말로 솥 안에서 주걱을 젓는 어머니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아이도 정말 정신이 없다. 그때의 불은 조금만 화력을 높이면 엿에서 불내가 나기도 하기에 말이다.


아궁이가 참 따스한 말 같으니 이렇게 기억을 되돌려 보면 안타까움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 아궁이에 대한 기억이 왜 초등학교로 끝이 나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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