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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K Aug 01. 2016

소설 <오르부아르>가 전쟁에 대해 말하는 방식

“대재앙은 만인을 죽이고, 역병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죽이지만, 젊은이들을 그렇게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오직 전쟁뿐인 것이다.” (386쪽)


지난 5월말,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 베르됭(Verdun)에서 열린 베르됭 전투 100주년 기념식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베르됭은 1차대전 당시 엄청난 희생자를 낸 격전지로, 이곳에는 프랑스와 독일 양측의 무명전사자가 묻혀져 있습니다. 이미 30여 년 전, 같은 장소에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의 콜 총리는 베르됭에서 손을 맞잡으며 철천지 원수였던 두 나라가 역사적인 화해를 이뤄냈음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행사의 맥락은 조금 미묘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브렉시트의 가능성에 맞서서 유럽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두 정상이 베르됭의 의미를 활용했던 것입니다. 즉 유럽 각국이 힘을 합치지 않고 자기 문제에만 골몰할 때, 또는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유럽 내에서 국수주의적 태도가 횡행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바로 베르됭이 증언해주고 있다는 것이죠.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인 <오르부아르>는 1차대전에 참전한 군인인 알베르와 에두아르.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싸고있는 종전 직후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소설입니다. 이 책이 종전 직전의 전투 장면을 통해 전쟁을 그려내고는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종전 후의 세계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전쟁이 알베르와 에두아르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그리고 이들이 이미 전쟁 전과는 결코 같을 수 없게 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한 사람은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 고통받는 처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예 턱이 날아가버린 부상을 당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소설의 얼개는 이 두 사람이 “전사자 기념비”라는 것을 만든다며 사기극을 벌여 엄청난 돈을 사취하는 과정입니다.

          읽어보실 분들도 있으니 줄거리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하지요. 다만 저는 이러한 사기극이 통할 수밖에 없었던, 즉 유가족들이 상실감과 절망에 몸부림치던 종전 직후의 프랑스 사회, 그리고 전쟁이 앗아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이 겹쳐졌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고 또 유가족들은 소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을까요?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소설 속에서 전사자들의 시신들이 처리되는 방식입니다. 소설의 악역인 앙리 도네프라델은 가매장된 전사자들의 시신을 공동묘지로 한꺼번에 옮기는 작업을 독점 담당하는 계약을 따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도네프라델은 크게 한몫을 잡고자 비용을 줄이고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게 되지요. 하나의 예로 관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관을 130센티미터로 일률적으로 맞추다보니 신장이 큰 병사들의 시신이 작은 관에 억지로 욱여넣어지게됩니다. 즉 관 속에 집어넣기 위해 신체가 훼손되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중국인 인부들을 고용하는 바람에 사태는 더욱 막장으로 치닫습니다.


인부들은 해부학적 지식도, 적절한 도구도 없기 때문에 유골을 편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삽날로 치거나 발뒤꿈치로 짓밟아서, 때로는 곡괭이까지 사용하여 부서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렇게한다 하더라도 관이 너무 작아 몸집 큰 사람의 유해를 다 담을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에 관을 대충 채운 다음, 그 나머지는 쓰레기통 격인 관에다 한데 부어 넣고 그게 꽉 차면 뚜껑을 닫고는 “무명용사”라고 적어 넣었으며, 이때문에 참배하러 온 가족들에게 고인의 유해 전체를 보장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인데, 공사를 낙찰받은 회사가 인부들에게 부과한 속도는 이 인부들로 하여금 시신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분들만을 관에 넣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이들은 규정에 따라 고인의 신원을 확인 또는 발견하기 위해 유골, 신분증, 기타 물품들을 찾아 무덤 속을 수색하는 작업을 아예 포기해 버렸으며, 이런 이유에서인지 여기저기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유골들이 빈번히 발견되었으며, …  (452쪽)


결국 죽은 이들은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국가에 버림받은 셈입니다.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병사들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당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소설에는 베르됭 전투 근처의 가매장된 묘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물론 허구의 내용이지만 작가가 후기에서 “전사자 발굴 스캔들”이라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학술논문을 참고로 했음을 밝혔듯이 이런 일이 전혀 터무니없는 공상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국가와 애국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30만 명에 달하는 독일, 프랑스 젊은이들의 생명을 한 전투를 통해 빼앗아갈 만큼 대단한 것일까요? 이렇게 국가와 민족, 애국을 내세운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 이것이 1945년 이후 유럽에 평화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요? 물론 냉전이나 국제관계의 역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좀 더 현실주의적인 분석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을 겪으면서 유럽인들이 이제 국가∙민족∙애국 등을 내세워 상대방을 살상하는 일의 무의미함을 체득한 것도 유럽의 평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메르켈 총리와 올랑드 대통령의 지적은 바로 유럽연합이 그 끔찍한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고 우리가 그 유산을 지켜야한다는 호소였겠지요.

          하지만 이런 성취가 동아시아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엄연한 적대국가가 북쪽에 있고 아직 일본이 독일만큼의 철저한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은 상황인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국가와 애국을 내세운 또 한 번의 전쟁을 다시 겪어야 할까요? 그렇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쟁은 이 땅에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지난 번 SNS에서 한때 유행했던, 많은 예비역들이 전투화와 전투복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며 마치 “전쟁에 준비되었다”는 식으로 그들의 결의를 표현했던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과연 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전쟁은 절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고 자신들의 모든 일상과 삶을 파괴하며 결코 그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전쟁은 인간성을 철저하게 짓밟는 동시에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그 상흔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을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그 누구라도 쉽게 전쟁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제가 서두에서 인용한 <오르부아르>에서의 언급처럼, 젊은이들을 그렇게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전쟁밖엔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주장은 2차대전 당시 히틀러에 “유화적”인 정책을 내세웠던 영국과 프랑스를 예로 들면서 많은 비난과 조롱을 듣습니다. 결국 겁에 질려서 전쟁을 못 막았다는 겁니다. 평화주의에 대한 반대 논거로 가장 흔하게 제시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 대책없이 평화만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 대책없이 전쟁을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극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한 신문의 논설위원이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과연 그 호언장담처럼 전쟁이 3일만에 끝나지도 않을 것이거니와 그 3일 동안 죽어나갈 수많은 국민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과연 3일만 참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날까요? 정말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기고했던 글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는 동안 독일 팽창주의가 시들해지길 바라면서 프랑스와 영국이 기다린 것은 잘못한 것일까? 평화를 지키기 위한 체임벌린 (당시 영국의 수상) 의 절망적인 전략은 아마도 많은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지나친 신중함은 때로는 잘못을 범하기도 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모든 가능성은 시도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적어도 마지막에는, 전쟁을 시작한 것은 히틀러였기에 전쟁의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으니 말이다. (움베르토 에코, 김희정 옮김, <가재걸음: 세계는 왜 뒷걸음질 치는가>, (열린책들, 2012), 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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