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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아도 약해질 수 있다

넘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에요

by 하나의 오후



보이지 않는 균열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잖아. 끝까지 잘 버텼잖아.


물론 이 말이 위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억누르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마치 쓰러지지 않았으면 괜찮아야 하고 울지 않았으면 계속 강해야만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서 늘 괜찮은 건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버티며 속으로만 삼킨 감정,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상처들은 마음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겉보기에 멀쩡한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비가 스며들면 틈새는 더 넓어지고 추위가 오면 얼어붙은 물이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작은 균열들이 점점 쌓일수록 약해져 가는 것이지요.

"괜찮아"라며 웃어넘긴 순간들, "별일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달랜 날들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되어 우리 안에 남습니다.



강함이라는 무거운 짐


우리 사회는 강한 사람을 칭찬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내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부끄럽게 여기곤 합니다.

울고 싶어도 참는 것,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것, 심지어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죄책감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진짜 강함이란 무엇일까요?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버티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때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일까요?

강해 보이려는 강박은 우리를 더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여도 작은 충격에 산산조각 나는 도자기처럼, 완벽하게 강해지려 할수록 우리는 더 쉽게 무너져버릴 수 있습니다.



약함을 받아들이는 용기


유독 지친 어느 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로 발걸음을 옮기다 거울 앞에 선 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소보다 더 무겁게 처진 어깨, 피곤함이 스민 눈빛.

그 순간,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거울 속 나에게 작은 말을 건넸습니다.


오늘도 참 수고했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줘서 고마워.


그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듣지 못했던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약해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것,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돌보는 지혜입니다.



조용한 회복의 시간


상처 입은 나무가 겨울을 지나 뿌리를 깊게 내린 뒤 다시 봄을 맞이하듯, 우리 마음도 회복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다만 하루아침에 모든 게 괜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서서히 찾아옵니다.


때로는 침묵 속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무언가를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지금의 감정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거울 속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무너지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사실 네 마음은 참 많이 힘들었지..


그 말 한마디가 오래 참아온 마음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즉,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인정과 위로는 타인이 건네는 말보다 강력한 치유의 힘이 됩니다.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쓰러지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약해질 자격이 있고 그 약함 속에서 더 단단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잘 버텨낸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때로는 약해져도, 때로는 쉬어가도, 때로는 울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다운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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