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x제주

모두 다른 길

감성작가 이힘찬

by 이힘찬

제주도에 정착한 지인에게 물어
멀지 않은 산책로를 찾아갔다.
등대가 보이는 외곽부터,
산 안쪽까지 길을 따라 걸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그냥 보이는 모든 길을 걸었다.

길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같은 공간을 몇 번 지나치기는 했지만,
같은 풍경을 몇 번씩 보긴 했지만,
모두 새로운 길이었다.
모두 다른 길이었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도,
같은 길 위에, 같은 위치에,
서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씁쓸했다. 아니, 속이 상했다.

-

두 마리의 토끼를 만났다.
사람을 피해 도망가지도 않고
주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둘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사진을 찍어도,
의식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만큼 둘만의 시간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은 또, 많이도 부러웠다.

-

한참을 걷고 나오는 길에,
어여쁘게 피어있는 분꽃을 보았다.
누군가는 열매를 빻아 화장을 했던 꽃.
누군가는 귀걸이라며 장난을 치던 꽃.

사진을 정리하다가,
분꽃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보고는,
이 꽃의 꽃말이 무엇일까 싶어
급히 검색해보았다.

내가 나를 쥐고 있는 모습이라니,
분꽃의 꽃말은, 겁쟁이였다.

2017.07.05 - 에세이 작가 이힘찬

#제주체류 3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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