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작가 이힘찬
오늘도 멀리 나가서 걷다 왔어요.
걷다 보니, 가을은 벌써 제자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있더라고요.
당신은 어디쯤에 있나요?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그렇다면 한 가지만 알아주세요.
나는 절대로, 백마 탄 왕자가 될 수 없어요.
나는 아마도 정장을 갖춰 입는 대신에,
색 바랜 청바지에 드문드문 올이
삐져나온 스웨터를 입고 있겠죠.
나는 아마도 백마를 타는 대신에,
낡아빠진 워커를 신은 두 발로
걸어서 나타나겠죠.
그리고는 아마도 당신에게
근사한 의자에 앉기를 권하는 대신에,
바닥을 한 번 툭툭 털어내고는
그곳에 털썩 앉기를 권하겠죠.
내게서 화려한 향은 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내게는 분명 사람 냄새가 날 거예요.
걸어오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재미있게 들려줄 테니까요.
나는 당신을 백마에 태워서 저 먼 곳으로
데려다주지는 못할 거예요.
그런데, 나는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거예요.
낡은 워커를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당신을 업고서 맨발로 걸어가며
이따금씩 당신과 얼굴을 마주할 테니까요.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그런데 기다리기 너무 지루하다면.
내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몇 걸음
마중을 나와도 좋을 거예요.
당신을 발견하고서 급하게 움직이다가
한 번쯤 철퍼덕, 넘어져 놓고서는
또 벌떡 일어나서 바보처럼 웃으며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보며
당신도 분명 활짝 웃게 될 테니까요.
이 바보 같은 나를 만나러,
마중 나와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