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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Mar 22. 2019

제주에 사는 맛,
봄날의 아침 산책

제주살이 사진 일기

제주에 봄이 찾아오고 있다. 다른 때보다 더 봄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왕벚꽃나무가 쭈욱 펼쳐진 '전농로'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년 이맘때에는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벚꽃이 피어있는 내내 전농로를 다녀갔었다. 하지만 올해는 아예 그 풍경 속에 살고 있고, 그 덕분에 봄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침 산책 혹은 저녁 산책 덕분이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 길을 걸으며 나뭇가지 전체의 빛깔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몇 달간 바라볼 수 있었다.

2017년에 제주 한 달 살이로 시작해서, 제주에 푹 젖어들어 결국 이주를 하고, 이제 3개월 후면 2년이 된다. 그렇게 쌓인 시간만큼, 제주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혹 조금 여유가 생긴게 아닐까.

여전히 붉은빛을 강렬하게 품고 있는 동백 꽃 - 사진 : 이힘찬

겨울-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꽃. 겨울-하면 반드시 출사의 대상이 되는 꽃. 동백은 나에게 그런 꽃이었는데, 작년에도 느꼈지만 봄이 다가오는 이때까지도 동백은 아름답게 피어있다. 물론 지역과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제법 많은 동백꽃들이 붉은빛을 진하게 품은 채 거리를 물들이고 있다. 동백꽃이 없었다면 제주에서의 그 춥고 우울한 겨울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백은 겨울 내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큰 힘이 돼주었다.

서서히 봄을 준비하는 왕벚나무 - 사진 : 이힘찬

오늘은 아침 일찍 종합경기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혹시나 해서 카메라를 챙겼는데, 역시나 제주의 거리는 한 번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천천히 걷다 보면 찍고 싶고 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툭 튀어나온 연둣빛 새싹부터 서서히 펼칠 준비를 하는 작은 분홍 잎까지, 종합경기장 주변을 걸으며 봄을 준비하는 다양한 모습의 벚꽃을 볼 수 있었다.

남들보다 먼저 활짝 꽃을 피운, 욕심 많은 벚꽃 - 사진 : 이힘찬

제주도가 자생지인 왕벚나무. 높은 곳만이 아닌 바닥까지도 톡-하고 꽃이 피어 있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작년 전농로 벚꽃축제 때 길거리를 뒤덮던 분홍빛 꽃잎들이 떠오른다. 잠깐 서있었을 뿐인데, 내 머리며 어깨, 우연히 마주친 길냥이의 등 위에도 어여쁜 꽃잎들이 쌓여있었다. 


여기서 잠시, 작년 벚꽃 축제 때의 사진을 몇 장..ㅎ

분홍빛으로 물든 전농로에 흠뻑 빠진 너굴양 - 사진 : 이힘찬

우리는 벚꽃이 휘날리는 전농로 중앙에서, 우리의 그림과 사진으로 만든 미니 엽서&책갈피를 판매했다. 많이 팔지는 못 했지만, 그 풍경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 너무나 행복했고, 판매 수익금으로 장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오늘 아침 산책길로 돌아와서... 제주에서의 산책의 매력은 바로 '새로운 만남'이 아닐까.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길이든 사람이든. 걷다 보면 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길냥이는 거의 매번 마주치는 편이다. 그래서 늘 가방에 '츄르'를 챙겨 다닌다.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탓에, 그냥 갈 수가 없었다 - 사진 : 이힘찬

딱히 무엇을 볼지, 어디에 갈지 정해놓고 나가지 않아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아침 산책이 하나의 여행이 된다. '저건 또 뭐지? 저긴 어딜까? 저 꽃은...' 그렇게 나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사람처럼 들떠서는 마음껏 방향을 바꾸며 걸어 다닌다. 그럴 때마다 하는 생각, '아, 이게 제주의 사는 맛이구나'.

제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들과 마주하게 된다. 새가 없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그래서 평소에는 새들의 소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유난히 가까운 곳에서 어여쁜 목소리가 들려와 올려다보니, 동백나무 가지 위에 노오란 빛을 품은 작은 새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놓칠까, 급하게 사진 속에 담았다. (영상도 찍었지만, 너무나 흔들 흔들...)

동백나무 위에 앉아 여유롭게 노래 부르던 동박새 - 사진 : 이힘찬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는 이 새는, '동박새'로 추정. 센스 있게도 마눌님께서 내 사진을 보자마자 후다닥 달려가서는 책을 한 권 가져와서 찾아냈다. 당신은 내조(?)의 여왕!

배가 어찌나 귀여운지..ㅎ 그동안은 새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부터는 조금 욕심이 생긴다. 아마 당분간은 새의 목소리에 더 유심히 귀를 기울일 것 같다.



오늘의 아침 산책은, 정말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다. 물론, 다른 어느 날의 산책이라고 불만족스러운 날은 없었다. 단지 오늘은 제주 생활에 있어 또 하나의 자극이 되어준 것 같다. 내일도 모레도, 또 새로운 길,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는 또 설렘을 안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는 그런 긍정적인 자극.

제주에서의 일상에 대해서는 오랜만에 글을 쓴 것 같다. 제주에 오고 처음 한동안은 참 열심히 돌아다니며, 참 열심히 글을 썼었는데, 어느새 또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하고, 어느새 또 익숙해져 가고, 그렇게 점점 '제주에 온 이유'를 잃어버리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이 '제주에 사는 맛'을 하루하루 누려야겠다.

글/사진 : 이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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