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처음 퇴근합니다.

안녕하세요. 서른다섯, 신입 햇병아리입니다.

by 이힘찬
첫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임팩트가 강했다. 몸이 힘들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첫날이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였고, 특별한 일 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분명 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하루 종일 벌을 선 기분이었다. 딱히 뭔가 시키지도, 부담을 주지도 않았는데, 눈은 피곤하고 머리는 답답하고 다리에는 쥐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미친 듯이 고팠다. 물론 배가 고픈 것은, 회사 출퇴근 거리가 너무 먼 데다가 시간 또한 애매해서.. 아무튼 그것도 다음에 따로 풀기로 하고(언제..?)


퇴근길1.jpg 저녁 8시, 첫 퇴근길, 역 앞에 서서


아이가 21개월이니까, 적어도 21개월 동안은 밤에 나간 적이 없었다. 출근 직전까지 아내와 아이와 모든 순간을 함께 했고, 우리에게 저녁 외출이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속삭이며) 잠.. 들었어..!


아이가 깨면 하루를 시작했고, 아이가 잠들면 하루가 끝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우리의 시계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일어나라, 밥시간이다, 놀 시간이다, 잘 시간이다. 나는 그런 패턴 속에 살다가, 정말 오랜만에 밤의 거리를 본 것이다. 아직 해가 길 때라서 그런지, 회사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밝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저린 다리를 달래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동네에 도착해서 보니, 어느새 가로등 불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둡네..


역 앞에 서서 잠시 계단을 올려다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터벅터벅 퇴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어깨에, 그 걸음 하나하나에 그들의 하루가 묻어 있었다. 조금이지만, 그들의 삶에 무게도 느껴졌다. 지금 내 뒷모습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무엇인가 묻어 있기는 할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내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다른 누군가도 나의 뒷모습에서 그런 하루를 발견할 수 있을까?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그 두 가지가 생겼을 뿐인데,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 나의 시간이 바뀌었고, 나의 관계가 바뀌었고, 나의 세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늘 그러했듯, 사람은 빠르게 적응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리가 덜 저릴 것이고, 그다음 날에는 오늘처럼 퇴근길에 미친 듯이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고, 또 며칠 후에는 이 가로등 불빛이며 짙은 하늘에 익숙하겠지.


나의 하루, 나의 세상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또 많은 것이 생기고 있다.


여보! 나 퇴근했어!


나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퇴근 소식을 전했다. 뭐랄까, 큰 아들에서 이제야 남편이 된 기분이었다.


퇴근길2.jpg 늦은 밤, 아이와 함께 놀던 집 앞 놀이터에서


퇴근길, 짙은 하늘을 따라 집으로 들어오다

아이와 함께 뛰놀던 놀이터를 마주했다.

그 텅 빈 놀이터 앞에서 들었던 생각.


아내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참 고맙고, 참 미안하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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