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4시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합니다.

안녕하세요. 서른다섯, 신입 햇병아리입니다.

by 이힘찬
회사까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다는 것은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이력서 넣기 전에도 거리를 확인했고, 1차 면접 때도 2차 면접 때도 나는 그곳에 다녀왔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일단 서류가 통과되는 것만 생각했나 보다. 1차 면접에 붙으려나? 어라, 2차 면접까지 왔네. 혹 이번에도 될까? 그런 생각만 했나 보다. 그런데 첫날 출퇴근을 하고 보니.. 이거 생각보다 보통이 아니었다.


출퇴근1.jpg 그나마 널널했던, 이른 아침의 버스 정류장에서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또 다른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면 회사 근처에 내린다. 당연히 계속 서서 간다. 웃기는 건, 회사 위치가 좀 끝쪽(땅끝..?)에 있어서 그런지 퇴근할 때는 같은 루트로 가는 버스가 없다. 다른 방식으로 집에 와야 하는데, 그건 또 지하철 갈아타는 횟수가 한 번 추가된다. 안 그래도 기운이 빠진 퇴근길에 과정까지 복잡하니, 과연 초짜 직장인의 퇴근길이란 지독했다.


나 이제 마지막.. 곧 내려.. 진짜 죽을 맛..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 2시간(배차 간격과 걸음 속도에 따라 최대 20분 단축 가능). 퇴근하는데 걸리는 시간 역시 2시간(거의 단축 불가). 첫날은 집에 오자마자 막 짜증이.. 막 욕이.. 나올 것 같았으나, 참아야지 뭐 누굴 탓하겠는가. 그래도 둘째 날에는 좀 견딜만했고(환승할 때 편의점 들려서 간식 사 먹었다), 셋째 날에는 더 견딜만했다(회사 나오기 전에 간식 먹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었다.


사실 나는 대중교통에 많이 낯설어져 있는 상태였다. 한동안은 계속 차로 다녔으니까. 아이를 낳은 후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없었다. 대중교통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아내가 만삭이었을 때 지하철 핑크색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아저씨 빌런과 사투를 벌였던 일 정도..? 아무튼 그래서 버스며 지하철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몰리는지,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접촉이 있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인데, 시국이 시국인데 괜찮겠지?


아! 아아!? 아..!!!


근데, 아니 웬걸? 마스크가 뭔 소용이냐 싶을 정도의 무한한 접촉.. 밀고, 비비고, 치고, 잡고.. 첫날은 너무 당황해서 지하철에 타고 있는 내내 두 팔로 내 몸을 소중하게 감싸고 있어야 했다. 다들 정해진 시간 안에 움직여야 하는, 조금이라도 늦을까 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그런 한마음으로 하나 된 사람들이 무수히도 많이 있기에, 차에 타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왕복 4시간.. 이 시간이 내게 더 잔인한 이유는, 출근 전에 우리 아이를 30분 정도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것도 아이가 늦잠 자면 실패), 그리고 퇴근 후에는 밥 먹고 씻고 하면 바로 아이가 잘 시간이라 놀아줄 틈도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내랑 시시껄렁한 얘기며 예능 얘기 또는 영화 얘기하면서 하하호호 수다 떨 시간은 더욱 없었다. 가족의 하루에서 나만 싹둑- 하고 떨어져 나온 것 같아서 며칠 만에 제법 울적해졌다. 하지만! 집에서 일하며 육아까지 독박하게 된 아내에 비하면, 내가 어딜 감히 힘들다 할 수 있으리오.


출퇴근2.jpg 퇴근길, 텅빈 반대쪽 복도를 바라보며


첫 출근,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5일 만에 4시간짜리 출퇴근이 벌써 익숙해졌다. 생각해보면 20대 때도 나는 그렇게 대중교통을 타고 멀고 먼 길을 오갔으니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 기분도 들고, 제법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만 그렇게 해봐요. 그런 생각 싹 사라져요.


그 친구의 말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또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주말이 찾아왔다. 그동안은 주말이며 공휴일을 따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요일에 상관없이 일하거나, 요일에 상관없이 쉬었으니까. 그런데 출근하고 일주일 만에 주말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강한 기다림이 생겼다. 내일은 우리 아이 많이 안아줘야지, 내일은 아내랑 시시껄렁한 얘기 잔뜩 하며 깔깔대고 웃어야지, 그런 생각에 들떠서 돌아오는 길에 환승역에 있는 꽃집에서 꽃을 한 다발 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기 전, 내가 좋아하는 치킨과 아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도 시켰다.


크~~ 다이어트고 뭐고 오늘은 먹자!


그동안 살아온 모습과 전혀 다른 일주일로, 분명 몸과 마음은 조금 지쳤지만, 나는 지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여러 순간들에 대한 소중함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앞으로 또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내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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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햇병아리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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