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힘찬 Sep 13. 2021

첫 월급은 증발하는 법

안녕하세요. 서른다섯, 신입 햇병아리입니다.

회사에 들어가고..


그래도 일주일에 한 두 편은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시간의 퇴근길을 거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씻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글이고 뭐고 멍~한 것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무겁다. 아직도 인이 박히지 않은 탓이려니.


집 가다 말고 멍하니 서 있었던, 어느 날의 퇴근길


브런치에 출퇴근 관련 글을 몇 편 쓰고, 출퇴근길에 내리고 타는 위치를 외우고, 구내식당 반찬의 로테이션을 알게 되고, 무릎이 매일 저려와서 무릎 안마기를 주문하고.. 그러는 사이 한 달이 흘렀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한 달. 정리되지 않은 한 달. 그리고 첫 월급이 나왔다.


와, 나 이 돈 벌려고 한 달 동안..


이라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월급은 정말 '깔끔'하게 사라졌다. 자고로 첫 월급은 증발하는 법, 30분만에 처리할 것들을 하고 나니 4300원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평소 나에게 가장 많은 문자를 보내주는 'ㅇㅇ은행'이 한 동안은 나를 찾지 않을 테니, 내야만 하는 것들을 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지만. 아무튼 일주일도 못 버틸 줄 알았는데 한 달을 버텼으니,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달래며 말해주었다.


어차피 통장도 비었잖아. 한 달 더.. 버텨보자..?


첫 월급 입금 내역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보며, 마치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지금 나에게는 지켜야 할 가정이 있다. 함께 앞날을 그려나갈 소중한 가족이 있다. 그러니 일단은.. 일단은 또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또 한 걸음, 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병원에 갔다가 늦게 출근하던 날, 에스컬레이터에서


지금은.. 너무 오랜만에, 그리고 너무 갑작스럽게 바뀐 나의 하루, 나의 환경 때문에 실제 주어진 상황들보다 더 힘들게 느끼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혹시, 이번 한 달이 더 지나고 나면 조금은 달라질까. 아니, 세 달쯤 지나고 나면, 그때는 출퇴근이 자연스러워질까? 그때는 내게 이 환경이 괜찮아질까.


다섯 달이 지나 서든, 1년이 지나 서든,

괜찮아진다면, 혹 그렇게 된다면..


그때의 괜찮음은 진짜 괜찮음일까,

아니면 그저 스스로 세뇌하듯

합리화시킨, 그런 괜찮음일까..?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좀, 푹 자고 싶다.






#직장인 #한달 #첫월급

#신입 #햇병아리 #피로누적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 2주 만에 병원에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