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른다섯, 신입 햇병아리입니다.
이 글을 써놓고, 제목만 8번을 수정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무겁고 어려운 주제. 그만큼 많은 고민,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는 시기에 쓴, 솔직하지만 나에게는 많이 무거운 글.
35살, 처음 출근합니다..
라고 첫 글을 썼던 게 정말, 진심으로, 며칠 전 같은데.. 어느새 세 달이 흘렀다. 회사의 기준으로, 수습기간이 끝나간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에게는, 재계약/정식 계약이 다가온다는 얘기기도 하다.
와, 벌써 세 달이에요..? 면담.. 아, 이미 하셨구나..?
직장인에게 수습기간이란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면접 때 말한 것처럼 일을 하는지, 이력서에 쓰여 있는 이력이나 기능들이 사실인지 확인하며 앞으로 계속 함께 일해도 될지를 판단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만이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 회사가 공개되어 있는 혹은 직접 소개한 내용 그대로의 회사인지,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앞을 내다볼 수 있는지, 지금 내가 받는 대우는 적절한지 등을 판단하는 시기가 된다.
일 하면서 어려운 건 없었어요?
아무리 취직이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이 회사가 기본적인 기준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면접 그리고 면담 때 말했던 내용들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회사도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이겠지만, 반대로 일을 하는 입장에서도 잠시 용돈을 벌 생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깐'이 아닌 '제대로' 일하며 성장할 곳을 찾는다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이 아닌 앞을 내다봐야 하고, 나는 성장할 수 있을지, 내게 독이 되지는 않을지, 회사가 원하는 직원의 모습과 내가 원하는 회사의 모습이 맞닿아 있는지, 그냥 소모품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분발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분위기가 갖춰진 곳인지, 그저 해왔던 대로만 이어가려는지 이해와 공감을 시도하고 있는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목표(성장)가 되었든, 돈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환경이 되었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알겠지만, 이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일을 할 때도 소통을 할 때도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당장의 일만을 처리하기 위해 평생 소모품만을 찾는 회사와, 더 넓은 내일을 위해 함께 발맞추어 나가는 회사는, 이미 그곳에서부터 갈라지는 셈이다.
7년간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가, 가정을 꾸리고 늦은 나이에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3개월이 흘렀다. 고작 3개월 만에 뭘 알겠냐마는.. 적어도 내가 있을 곳과 있어서는 안 될 곳, 내가 에너지를 투자할 곳과 투자해서는 안 되는 곳, 내가 성장하며 달려갈 곳과 시키는 것만 하다 끝날 곳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3개월이 제법 긴 시간이 아닐까.
나에게 이 3개월은.. 정말 새로운 시도였고, 도전이었고, 그래서 그만큼 오랜 시간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생활패턴의 갑작스러운 변화, 출퇴근 4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리,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적은 급여, 하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여야 하는 위치, 그리고 부담감.. 물론 힘들었지만, 물론 무거웠지만, 일을 시작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회사는 할 수 없는 것 까지 해내는 사람을 원해!
라고, 누군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나는 개인적인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원래 쓸데없이 열심인 사람이었고, 그게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었고, 더 좋은 팀원이 되고 싶었고, 더 뛰어난 직원이 되고자 매일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노력했다. 물론, 회사가 원하는 직원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회사의 입장에서 좋은 직원이었을지 아닌지는... 그들만이 알고 있겠지.
그러게 제가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말랬잖아요..;
수많은 핑계들과 마주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야 했다. 문화를 바꿔야 하지만, 사실은 바꿀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답변들도 많았다. 그리고 내 성격상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들.. 물론 내가 처한 환경을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그냥 받아들이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충 해도 되는 분위기면 그냥 대충 하고, 정신없이 해야 하면 정신없이 하고, 이러면 이렇게 저러면 저렇게.. 그런 방식으로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것, 그게 현실이 원하는 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랬음에도 나는, 3개월 안에 그 '이유'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얻은 것이 참 많다. 배운 것이 너무도 많다. 너무도 무지했던, 사회의 현실적인 부분들을 마주하고 깨닫는 시간. 곁에 있으면서 놓치고 살았던,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 이 사회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 내가 더 배워야 하는 것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하는 것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3개월이었으리라.
올해의 남은 시간.
그리고 내년, 그 이후,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값진 하루
조금 더 희망찬 하루
조금 더 의미 있는 하루
그런 하루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그저 그런 바램
그저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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