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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Oct 09. 2023

[논픽션 에세이]2023년 내 인생을 가장 바꾼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사회의 경계선을 물고기 망치로 깨부수다.




01.

나는 철저하게 나만의 시선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룰루 밀러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바라보려 한다. ‘나만의 시선’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우리가 언뜻 보고 느낀 선과 악을 초반에는 가랑비가 옷깃을 적시듯 조금씩, 후반에는 과감한 소나기처럼 바꿔놓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에 있는 챕터를 읽고 당신은 물고기 분류를 향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열정에 매력을 느끼거나, 혹은 나처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구절을 메모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초반에 메모해놓은 부분을 보니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한 생각이 너무나도 바뀌어서 흡사 반전 드라마를 본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이 책에서는 선이라고 생각한 대상이 알고 보니 추악한 악이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반전 요소가 있어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고, 각자 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철저하게 나만의 시선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써보려고 한다.     


02.

룰루 밀러라는 한 여자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함께 나오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보다 그녀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린 시절이 소개된 후 어느 챕터에서 어딘가 어두운 아이로 불쑥 나타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향한 무례한 말을 들어도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의 큰언니는 더욱 심했다. 학교에서 너무 심한 괴롭힘을 당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과연 이들의 인생에 빛이 있을까? 한 사회의 일원으로 어엿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는 그녀들의 아버지도 장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저자에게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아라.”라는 말을 건넸다.


아버지의 말대로 저자와 큰언니는 의미 없는 존재였을까? 시간이 흘러 저자는 잠깐 영원한 행복을 꿈꿨지만 이것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자신의 성적 취향 때문에 함께 미래를 그리던 남자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사랑하던 그 남자가 없어지자 세상이 어두컴컴해졌다. 친구들은 그녀가 다른 여자와 저지른 짓을 알고 멀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룰루 밀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존경받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심을 가졌다. 룰루 밀러가 관심을 가질 정도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니까.

  


03.

책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해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형을 잃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린 시절’, 지진 등으로 하늘이 자신의 많은 것을 앗아갈 때도 파괴되지 않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비이상적인 ‘낙천성의 방패’, 그의 오만함으로 제멋대로 부적합자를 탄압하는 ‘우생학’, 극악무도한 그는 인생 전부를 물고기 분류에 바쳤지만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린 시절 형을 잃고 수집, 분류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다른 사람이 시간 낭비라고 여기던 어류 분류에 집중하던 순수한 소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성인이 된 후 대학의 종신 교수가 되었고, 결혼했으며, 서른네 살이 되었을 때 전국에서 가장 젊은 대학 학장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의 발판에는 자기는 무조건 잘될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 ‘낙천성의 방패’가 있었다. 낙천성의 방패가 있었기에 그의 첫 번째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놀라울 정도로 흔들림 없이 어류를 분류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이었던 바버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슬퍼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시 대지진으로 자신이 30년간 분류한 물고기들이 모두 엉망이 되었을 때도, 자신과 대립하던 제인의 독살을 덮으려고 진저브레드를 과식해서 죽었다며 얼토당토않게 사인을 바꾸었을 때도 그가 지닌 낙천성의 방패는 견고하게 그의 이념을 지켰다. 과연 이렇게 과도한 자기 신뢰는 옳은 것일?



04.

책에서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공동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를 기점으로 데이비드의 극악무도함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제인의 독살에서 용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사인을 바꾼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는 더 나아가 인간도 분류하고 싶었던 건지 ‘세상에는 없애버려야 할 사회 부적합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데이비드의 잔혹성이 정점을 찍은 ‘우생학’이다. 아마 독자들은 제인의 죽음에서 그에게 환멸감을 느꼈다면, 우생학에서는 그를 가장 잔혹한 범죄자로 느꼈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이 지구상에서 제거해버리고 싶은 종류의 사람들인 빈민들과 술꾼들, 백치들과 천치들, 도덕적 타락자들을 모두 모아 적격자와 반대되는 ‘부적합자’라는 한 범주에 몰아넣었다. 그는 우월한 유전자가 흘러넘치도록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의 생식기를 잘라내서 박멸하는 방법을 합법화하려고 했다. 이제 어릴 적 순수한 모습은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흰 도화지 같던 마음은 이미 악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05.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난다. 이런 악인이 마지막까지 행복하다니, 그를 향한 나의 분노를 해소해줄 권선징악은 없는 걸까? 여기서 이 책은 아주 과학적인 방법으로 데이비드가 인생을 걸었던 것을 빼앗아버린다. 그건 바로 데이비드가 어류학자지만, 사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이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부해보면 호흡기 등이 자기들끼리보다는 포유류 등 다른 동물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수한 유전자만 남기겠다며 포악을 부렸지만 그가 평생을 바친 물고기는 ‘어류’라는 한 단어로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부한 종을 품고 있었다. 나는 물고기를 수없이 해부한 데이비드 스타 존스도 생전에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류학자라는 자신의 직함이 얼마나 덧없고 우스꽝스러운지를, 자신은 선과 악을 나누었지만 물고기는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잘못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흑백 논리로 진실을 감추고, 선과 악을 나누고, 많은 이를 부적합자라며 고통으로 밀어 넣었으리라.     


이는 다윈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다윈은 진화론에서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편의대로 자연을 분류하고 나누었지만 자연은 정해져 있지 않고 다양하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자연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마치 자연 속 민들레가 누군가에게는 잡초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약초도, 염료도, 화관도, 생명 유지 수단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우생학의 관점에서 보면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수많은 다양성이 깃들어 있다. 사회에서 정해 놓은 경계선 너머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 하던 나에게 이 책은 자연의 모습을 소개하며 다양한 기회와 마주하라는 교훈을 안겨줬다. 저자 또한 자신을 바보에 얼뜨기, 자격 미달의 저널리스트라고 낮추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경계선 너머의 새로운 기회에 한발씩 내딛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지금도 수많은 경계선 뒤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을 궁금해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룰루 밀러의 모습을 보며 ‘나도 다양한 모습을 지녔어. 그러니 나 또한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협한 범주들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를 깨부수지 못한 건 아닐까? 자연이 지닌 무한한 세계처럼 범주를 넘어선 곳에 아직도 많은 기회와 발견이 숨 쉬고 있지 않을까?



06.

세상에 권선징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회의적인 생각을 뒤집고 무한한 자연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장 가혹한 벌을 내렸다. 또한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를 한 마리에 개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녀는 민들레처럼 자신에게 무한한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의 범주가 절대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우생학을 열렬히 믿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 양성애자를 무조건 배척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사상만이 옳다고 내세우며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지역으로 나뉘어 다른 지역을 비난하고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이 책은 이렇게 다양성을 무시하고 사회에 편의대로 경계선을 만든 사람들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로 깨부수는 망치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신념은 계속 이어지리라.

07.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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