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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May 26. 2024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서웠던 것이다. (2)

30대 INFJ와 ESTP의 연애

30대 INFJ(여, 글쓴이)와 ESTP(남) 커플 이야기

※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성격이 정반대인 커플은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한다. '보완'. 모든 일을 긍정적 사고로 보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단어다. 자신의 장점을 그러모아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 이러한 보완을 거쳐 비로소 하나가 되다니, 잘만 하면 만화책에 나올 법한 환상적인 결말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만화만큼의 역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방을 보완해주고 있었다. 무언가를 함께 할 때 거의 항상 "그건 가서 정하지, 뭐"라고 말하는 그와 실제로 그리하였을 때 낙담하는 그를 본 적이 있기에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나. "왜 인생을 사는지 항상 고민하는데, 그 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어"라며 막연한 말을 하는 나에게 "인생은 이미 태어났으니 '왜'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야지."라며 현실을 살아가게 해주는 그.


여태까지 그랬듯이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보완하면 될 일이었다.




다음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그였지만, 다시 생각이 바뀌었는지 태국-부산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다음날인 금요일 오후 4시에 보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평소에도 금요일 저녁 늦게 만나서 다음날인 토요일까지 함께 있을 때가 많았다.


곱슬머리의 그: "우리 다음 주에 보기로 한 야구는 몇 시에 예매였지?"

: "내일 오후 2시."

곱슬머리의 그: "아, 오전 10시가 아니었어? 그럼 나 부산 도착하면 한숨 자다가 오후 1시 반에 일어나서 예매 준비해야겠네."


우리는 다음 주에 함께 야구를 보기 위해 내일 인터넷에서 티켓도 예매해야 했다. 롯데자이언츠의 팬인 나와 삼성라이온즈의 팬인 그의 관심을 끄는 롯데자이언츠 vs 삼성라이온즈의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경기는 예매가 쉽지 않기에 각자의 집에서 티켓 2장을 예매해 보고, 둘 다 성공하면 하나는 취소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예매 시간 10분 전인 오후 1시 50분에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일단 내가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10,000명이 넘는 대기자가 있다는 인터넷 창의 표시를 보고 무시무시한 인원이 깜짝 놀라서 그에게 일어났는지 확인 전화할 시간도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스포츠가 이렇다. 주변에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는 찾기 어려운데 막상 예매할 때나 경기장에 갔을 때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팬들도 그득하다. 10,000명 이상의 티켓팅 도전자들과 경쟁하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몇 번의 새로고침 버튼을 클릭 후 다행히 두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곱슬머리의 그에게 겨우 좌석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메시지의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태국에서 돌아온 후 포근한 한국 집에서 자느라 티켓 예매 시간에 깨지 못한 듯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곱슬머리의 그는 잠에서 쉽게 깨지 못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아직 사귄 지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 이미지로 새겨진 그는 티켓 예매를 하지 못하고 잘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예매해서 그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 될 일이었다. 대신 그는 경기 당일이 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곤란한 상황에 대처하고 행동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이었다. 나는 계획은 잘 짜지만 실전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는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므로.


오늘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인 오후 4시에 성큼 다가선 오후 3시 35분경. 아직 곱슬머리 그의 연락이 없었지만, 얼른 하고 있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데이트할 준비는 해둬야겠다며 바쁘게 마른 빨랫감을 개고 있을 때 그의 전화가 왔다.


곱슬머리의 그: (잠에 취한 목소리) 아... 나 지금 일어났어.

: 응, 알았어. 야구 예매해서 좌석이 어딘지 메시지로 보내 놨으니 확인해 봐.

곱슬머리의 그: 예매에 성공했어?!


몇 시간 전에 티켓을 예매한 후 바로 메시지로 티켓 화면을 캡처해서 설명과 함께 보내두었지만 확인하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난 몇 개월간 그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믿었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전화보다 메시지에 손이 가지만, 그는 메시지보다 즉시 전화를 걸어버리는 사람이었다.


곱슬머리의 그: ...으으윽... ○★■○★■...

: (스마트폰을 스피커 상태로 해두고 빨래를 접다가) 응? 뭐라고?

곱슬머리의 그: 음냐음냐... 우리 오늘은 그냥 각자 쉴까?


자다 깨서 오늘 만나지 말자고 하는 그였지만 이 또한 예상안에 들어 있던 행동이었다. 물론 물을 담아 두는 댐처럼, 내가 그를 어디까지 담아둘 수 있는지 나조차 아직 가늠하지 못했기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어쨌든 괜찮았다. 엄연히 해외인 태국에 다녀왔는데 피곤해서 쉬고 싶을 수 있지, 암.


: 알겠어. 그럼 내일(토요일)에 볼까? 몇 시에 볼래?

곱슬머리의 그: 어? 나 내일 일하는데.

: ??


 예상을 벗어나는 말이었다. 앞에서도 짧게 적었듯이 우리는 보통 금요일 저녁에 만나 토요일까지 종일 함께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몇 개월간 이러한 데이트 형식을 유지해 왔으니 오늘(금요일) 만나면, 아니, 오늘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일(토요일)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나였다.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니 이번 주는 토요일도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리라 생각했는지 일언반구도 없던 그는 약속 시간인 오후 4시가 다 되었을 때 나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예상한 선, 계획한 선을 그가 넘어서자 나의 댐은 허무하게도 무너졌고 댐 안의 물이 마을 전체를, 내 마음 전체를 뒤덮는 재난이 발생했다. 이 이상 전화했다가는 울음이 터지거나 고장 난 로봇처럼 아무런 말이나 내뱉어서 그에게 보이기 싫은 감정적인 모습만 보이게 될 듯했다. 나는 "알겠어. 나 그럼 끊을게."라고 말했고 곱슬머리의 그는 그제야 조금 놀란 목소리로, 당황했는지 넌 지금 뭐 하고 있었냐는 현재 상황과 무관한 질문을 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빨랫감을 힐끗 보고는 빨랫감을 접고 있다고 하면 전화를 끊지 못할 듯해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대충 둘러댄 후 전화를 끊었다. 예전에 내가 부모님께 써먹은 전례를 보았을 때,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다급히 전화를 끊은 다음, 손에 있던 빨래를 접지 않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힘이 빠져서 그냥 침대에 누워서 울고 싶어졌다. 빨랫감이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자리에 위치한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몸에 힘을 뺄 수 있는 상태가 되자 짧은 숨을 내뱉을 수 있었고, 그제야 무언가를 하나 깨달았다. 사귀기 시작한 후부터 금방 끊겠다고 말하기까지, 나는 곱슬머리의 그에게 한 번도 먼저 전화를 끊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야구 하나 보는 데에도 좌충우돌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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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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