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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Jun 30. 2024

목표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 비 오는 신주쿠역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4)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4)

30대 ESTP(남)/INFJ(여)의 일본 여행기입니다.

※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 일본어 발음 표기의 경우 자주 쓰이는 표현 사용했습니다.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hoegirl0226/198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여행에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강력한 존재가 아닐까? 비는 애써 열심히 찍은 관광지 사진도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며 손에 든 짐이 줄어야 주변 풍경을 마음 편히 눈에 담을 수 있는 관광객을 우산이라는 버릴 수 없는 짐과 함께하게 만든다. 내가 여행하는 날의 날씨를 몇 주 전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생긴 이유다.


곱슬머리의 그(ESTP)와 내(INFJ)가 도쿄를 여행한 3월 끝자락은 첫째 날, 둘째 날 오전까지는 비가 내렸고 둘째 날 오후, 셋째 날, 마지막 날에는 맑았다. 여행 초반을 비와 함께했는데, 함께한 시간은 잠시지만 비가 남기고 간 여파는 꽤 컸다.


첫째 날: 비가 내려서 비를 잔뜩 맞은 캐리어를 질질 끌고 숙소로 향하는 모습.

둘째 날: 오전에 엄청난 비가 내리는 바람에 꿈과 희망이 가득한 디즈니 시 놀이동산에서 흡사 전우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을 우산으로 막으며 함께 헤쳐나갔고, 다행히 오후에는 날씨가 맑아져서 디즈니 티켓값만큼은 노는 모습.

셋째 날: 전날까지 비가 내리자 기온이 뚝 떨어졌고 벚꽃 개화 시기가 일주일~이 주일 정도 미뤄졌다. 벚꽃 명소로 손꼽히는 신주쿠 교엔과 나카메구로에 벚꽃이 한, 두 그루만 피어난 모습.

마지막 날: 날씨가 맑아졌고 이에 따라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서 뜨거워진 여름 날씨에 당황하는 모습.


여행은 과정보다 결과가 중한 것이 아니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한 것도 아닌 결과와 과정이 모두 중요한 일인데, 위의 내용을 보니 과정과 결과에서 어지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행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날씨보다 강력한 존재가 있다. 바로 함께하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연애 초반의 커플은 날씨조차 지배하지 못했고 우리는 당황하면서도 금세 하하 호호 웃으며 도쿄 여행을 만끽했다.




비가 화끈하게도, 소소하게도 아닌 애매하게 내려서 찝찝했던 첫째 날. 스이카 카드(교통 카드)가 추가 결제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가 난 그를 잠시 내버려 두고 혼자서 신주쿠역 역무원에게 향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다른 남자 역무원이 있었다. 금방 울음을 터뜨려 빨개진 눈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 역무원은 환불 가능 여부를 여기저기에 전화해서 확인해 본 후 바로 웃으며 환불을 해주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문제가 해결되었고 나의 기분은 5분도 채 지 않은 시간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왔다.


역무원이 무뚝뚝한 사람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아리가또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를 연신 내뱉었다. 그리고 역무원이 문제를 처리해 주는 동안 나는 옆에서 뿔이 난 상태로 서 있던 곱슬머리 그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너와 나는 금방 작은 말싸움을 하였고 나는 울었고 너는 내 울음에 당황하였지만 나는 네가 여전히 좋으니 화를 풀라는 뜻이 담긴 나름의 제스처였다.


사실 완벽하게 마음이 동해서 그의 손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화를 낸 그가 짜증 나기도 했지만, 이번 도쿄 여행의 목적이 '함께 행복하게 여행하기'였기에 언짢은 마음을 얼른 풀고 싶어 보인 행동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과의 안정적인 유대감은 필수적이었다. 적어도 사람과의 관계가 여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나에게는 그랬다.


이렇게 글을 쓰면 나를 화도 내지 않고 상대방과의 화합을 도모하는 넓디넓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손을 잡는 나의 행동에 곱슬머리의 그는 화가 사르르 풀렸는지 금세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나는 금방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이 행동하는 그가 갑자기 얄미워서 "됐어, 너랑은 안 놀아"라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여행하기'에 어울리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나의 말에 곱슬머리의 그는 다시 화가 나서 "흥. 그래, 말하지 마"라고 말했고 전혀 내게 져주지 않는 그의 행동에 나는 "어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저 성질 좀 봐!"라며 싸웠다.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여행하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연인 관계의 더욱 웃긴 점은 이렇게 싸우고도 숙소에 도착하고 조금 마음이 편해지자 다시 서로 실실 웃으며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건지 참... 연인 관계는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원인과 과정과 행동을 해석하기 힘든 분야였다.




스이카 카드의 결제 오류를 해결할 때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내가 돋보였고 신주쿠역을 비롯한 도쿄에서 길을 찾을 때는 곱슬머리의 그가 단연 돋보였다. 신주쿠가 맛집과 술집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번화가인 데다가 수많은 전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곳이기에 이따금 도쿄로 향하는 나는 부끄럽게도 언제나 길을 헤맸다. 신주쿠역에 들어서면 노선을 나타나는 색깔인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연두색 등이 보였고 이를 보는 순간 나는 언제나 빨간색 신호등이라도 본 사람처럼 제 자리에 멈춰 서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쿄에서 2년 넘게 살았던 곱슬머리의 그 덕분에 도쿄에서 길치를 자처하던 나도 편안하게 가고 싶은 가게와 명소를 찾을 수 있었다. 곱슬머리의 그는 구글 지도를 잠깐 슥 보더니 스마트폰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 대신 내 손을 잡고 자못 든든하게 목적지로 향했다. 첫째 날부터 불친절한 역무원과 교통 카드 결제 오류로 진을 뺀 우리는 따뜻한 주황빛 조명이 눈에 띄는 츠케멘(つけ麺, 쫄깃한 면을 육수에 찍어 먹는 일본 음식) 가게에서 오전 12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식사를 했다. 속된 말로 개고생을 하고 쫄쫄 굶다가 식사했음에도 따뜻한 공간에서 츠케멘을 먹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것이 츠케멘 파워(?)인지 연인인 그와 함께 식사해서 샘솟은 파워(?)인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다.


맛은 평범하지만(예전에 맛있는 츠케멘을 많이 먹어 보았기에 이미 나의 입은 고급스러워져 있었다...) 양은 유독 많은 츠케멘을 먹고 난 후, 곱슬머리의 그는 가볍게 한잔하자며 토리키조쿠(鳥貴族)라는 일본의 유명 닭꼬치 프랜차이즈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서 우리는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본인을 만났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1.도쿄 비행깃값 120만 원의 정체 - 대한항공

2.호텔 이중 결제의 정체 - 발리안 리조트

3.4일,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 도쿄 나리타 익스프레스

4.목표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 비 오는 신주쿠역

5.그의 추억과 술 취한 일본인 - 이케부쿠로 토리키조쿠

6.드러난 INFJ의 이중인격 - 도쿄 디즈니 씨(1)

7.드러난 INFJ의 이중인격 - 도쿄 디즈니 씨(2)

8.일본 슈크림 같은 남자와 도쿄에 - 이케부쿠로

9.일본 벚꽃처럼 진한 우리 - 신주쿠교엔

10.크리드 카미나 오 드 퍼퓸 - 신주쿠 루미네 백화점

11.이 남자와 사귀려면 도쿄로 가라 - 신주쿠 스시잔마이

12.깨진 휴대폰 액정과 함께 깨진 이성 - 규카츠 이로하, 블루보틀

13.우리 좀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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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이전 13화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 나리타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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