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것들
요즘 따라 진부하지만 돈으로 사랑은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부가적인 매력 요소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이 완전한 사랑을 돈 주고 살 순 없다.
그래서일까? 사랑은 알기 어렵고 두루뭉술하다. 돈과 달리 내가 지닌 만큼, 혹은 그 이상 좋아하는 상대가 지니길 바란다. 이러한 사랑 때문에 나는 자주 울고 웃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능숙하게 접고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민폐가 될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에 한없이 약해진다. 얼마 전 번역하다가 뜬금없이 등장한 램프의 요정 '지니'의 이야기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힌 것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지니가 주인공에게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은 이러하다.
1. 생명은 되살릴 수 없다.
2.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
3. "소원을 무한히 들어줘"와 같은 무제한적인 소원은 빌 수 없다.
마법의 정령인 지니조차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은 금지된 소원이라고 거절했다.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 강요해도 가질 수 없으니까. 당시 나는 집에서 재택근무로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었다. 지니에 관한 문장을 보았다. 괜히 집중력이 흐트러져 다시 일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기 위해 잠시 책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유튜브로, 유튜브에서 명상 영상을 틀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러나 영상 속 명상 선생님이 세 번 반복한 "그대로 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려버렸다. 이때 나는 결혼을 약속한 그와 크게 다툰 상태였다. 그는 나를 사랑할까? 볼을 타고 한줄기 흘러내린 눈물은 꺼이꺼이 소리를 낼만큼 점점 많아졌다.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내 마음을 받아줄 자는 누구인가? 일본어에는 도로도로(ドロドロ)라는 말이 있다. 여러 뜻이 내포되어 있으나 감정이 꼬이고 질척거리는 상황일 때 쓰인다. 삼십 대를 지나 나이가 들수록 도로도로함을 서로 받아 줄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인간관계가 깊어지면 도로도로함을 피하기 어렵거늘.
한편 일하다가 뜬금없이 울어도 그나마 빨리 일어서게 해주는, 나의 이 모습을 오롯이 받아주는 공간이 있다. 나의 혼자 사는 집. 비록 전세지만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혼자 살게 해준 곳. 집에서 재택근무를 할 때가 많아 집의 존재가 유독 중요했다.
나를 너무나 아껴 혼자 살기를 반대하던 부모님을 뜻을 꺾고 이사 온 이 집에서 처음으로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을 했다. 나에게 정상적인 생각이란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못하지 않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판별할 수 있음을 뜻한다. 가족을 사랑할지라도 함께 있으면 서로에게 물들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꺼리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즉, 자신을 알기 어려워진다.
하나 더. "예전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지만 결혼하고, 애 낳고 인간 됐다"라고 밝힌 배우 최지우의 말대로 결혼 준비만 하여도 내가 사회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중심을 놓지 않을 힘 또한 필요해졌다. 이러한 힘은 혼자 사는 집에서 내 멋대로 지내고 생각하면서 생겼다. 당신에게도 언젠가 한 번은 아늑한 집에서 혼자 살아보기를 추천한다. 상황이 어렵다면 혼자 있는 시간이라도 늘려 보기를 추천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맞이하게 해주는 집. 거실에서 좋아하는 캠핑 영상을 무진장 보아도 내 취향을 존중해 주는 집. 더욱더 자연인의 차림으로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집. 남향은 아니지만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아침에 커피와 마카롱을 즐길 수 있는 집. 가끔 방의 불을 켜놓고 잠들어도 누구도 잔소리하지 않는 집. 혼자 어묵탕을 끓여서 먹으며 진짜 맛있다고 셀프로 칭찬할 수 있는 집. 멋대로 지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혼자 사는 자유는 마음을 말랑하게 이완시켜 주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그제야 사회에 보이는 모습에서 한 꺼풀 벗겨 내고 진정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세상에서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 인생의 늦고 빠름을 규정짓는 세상의 시선을 벗겨 낸 나와 마주했다. 이러했던 순간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와 함께 해주어 고마워. 하지만 나는 나를 제일 사랑해. 명상하며 우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집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기적일 수 있으나 타인과 잠깐 거리를 두고 나에게 집중하자 마음에 공간이 생기면서 숨이 트였다. 나는 타인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나일수록 나를 제일 사랑해야 인생을 오가는 타인들을 어렵지 않게 마중하고 건강한 관계를 쌓을 수 있다고, 그렇다고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고 사랑하는 것. 당연해 보이는 말인데도 이상하게 너무 어렵고 타인에게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다가 마음이 찢기곤 했다. 그래도 내가 지금 발붙이고 글을 쓰는 이 집이 있다. 이 집이 나를 더 사랑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얼마 전 가볍게 한 심리 테스트에서 '정이 많다', '잘 챙긴다', '오지랖', '익명으로도 악플 달지 못한다', '오그라드는 말을 잘한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성격조차 타인에게 쉽게 밝히지 못하고 나를 숨겼다. 이러한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곳, 내게 자유를 준 이 집에서 타인이 아닌 나에게도 조금 더 심리 테스트에 나온 말대로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정이 많고, 사랑한다는 오그라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 소확행이라도 늘리며 나를 챙기기 시작해 보려 한다.
요술 램프 지니에게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 단, 여기에는 나라는 예외가 깃들어 있다. 나에게 주는 사랑은 강요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