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하다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문장에서 멈출 때가 있다. 바로 좋은 문장을 눈에 담았을 때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문장은 감동적인 문장을 뜻한다. 기계처럼 번역하다가도 순간 멈추게 되는 따뜻한 문장.
나는 매뉴얼, 기업 문서와 같은 딱딱한 글을 번역할 때가 많은 산업 번역가이기에 타인의 눈에는 얼핏 보면 문장을 보고 감동받거나 괜스레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책을 번역해서 낸 적도 있지만, 그 책은 자기 계발서여서 내용은 훌륭해도 가슴이 뛰거나 쪼그라들거나 몽글몽글해지는 문장은 없었다. 영상 번역을 했을 때는 첫 작품이었던 애니메이션의 대사가 좀 감동적이긴 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 문장이었지. 그 외에는 마감 시간에 쫓겨서 얼른 번역하고 실수하면 죄송하고 그런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의외로 게임 번역을 하다가 감동받아서 청승맞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게임의 스토리를 번역하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우정과 사랑을 향한 일편단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많은 어른들 사이에선 보기 힘든 우정이라서 그런가. 또 어느 날엔 어미 고양이 이야기가 감동적이어서 운 적도 있다. 동물 이야기는 어디에 등장해도 심금을 울린다.
한편, 오늘은 조금 특이하게 일본 책(원서)을 읽다가 울었다. 계속 울었다는 문장을 쓰니까 부끄러운데... 요즘 원서 기획서를 쓸 요량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사랑과 철학에 관한 책을 읽다가 여러 문장이 나의 마음을 건드린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우선시하라는, 덩그러니 한 문장만 쓰면 진부할 수 있지만 원서의 수많은 문장 속에 있으면 마주했을 때 희열을 느끼게 되는 소중한 문장. 초보 기획서 작성자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한다. 음, 이 정도면 기획서로 써도 괜찮겠어. 나 혼자 합격 도장을 땅땅! 찍는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듯한 삭막한 세상이지만 순간순간 감동받게 해 주는 이 직업은 좋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