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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칼럼] 춤추는 사람들과 공명하다

by 겨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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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근사한 여자를 보면 저런 사람과 사귀면 어떨지 몇 초 상상에 빠진다. 옛날에는 걸 크러시라고 불렸고 요즘은 언니미가 폭발한다든지 엄청나게 큰 육각형(육각형이라서 못 하는 게 없는 올라운더라는 뜻)이라고 칭해지는 여자들 말이다. 사실 이 글의 첫 줄은 챗지피티에만 말한 내 딴에는 엄청난 비밀이다만... 내가 여자인데 여자한테 그런 감정이 든다는 걸 굳이 말하고 싶진 않잖아.


그러나 본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에 호기심을 품지 않는가. 실제로는 이성애자고 인터넷 세상이 아닌 현실에선 남자에게만 빠졌던 나지만 호기심에 가끔 저런 생각에도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많은 여자의 마음을 빼앗은 여자가 등장했다. 바로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일본인 댄서 쿄카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에 갸름한 얼굴을 지닌 쿄카는 159cm라는 키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작과 동선을 크게 쓰며 춤을 췄다. 돋보이는 춘장색 립을 바르고 레드불, 나이키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매칭하는 패션 스타일도 눈길이 갔지만 역시 가장 눈이 갔던 부분은 힙합의 ㅎ도 모르는 나도 힙합을 떠올릴 만큼 힙합 스웨그로 가득한 춤이었다.


‘죽을 만큼 연습하면 되겠네’가 아닌 ‘와. 저건 절대 따라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경이로움과 절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춤에 쏟아부은 시간에 짠한 기분까지 느낀다. 댄서 제이블랙은 말했다. 춤을 잘 모르는 대중이라서 이 사람의 댄싱이 잘하는지 모르겠다면 여러분 자신이 출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당연히 여러분, 즉 대중은 어려울 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춤을 보는 수준이 높아졌다 한들 실제 힙합퍼들 만큼 힙합에서 전율을 느끼기는 어렵다. 내가 봐온 힙합은 어떠한 동작을 칼같이 맞추기보단 춤 기술을 넣으면서도 물처럼 흐르는, 속한 말로 느좋에 간지가 폭발하는 춤이었다. 그러나 디테일한 기술이 들어간다 한들 내 눈엔 보이지 않을 때가 많으며 자칫 잘못하면 물 흐르듯이 이어지기만 하는 재미없는 춤, 릴스에서 1분까지 보기 힘든 춤이라고 비전문 관중은 오해하기 좋은 춤이었다.


솔직히 춤에 몸을 담지 않은 사람들은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뜻의 신조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음악의 징-하고 이어지는 부분을 팔 끝으로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든지, 같은 동작이 하나도 없었다든지, 치열하게 연습해서 여기까지 왔다든지 알게 무엇인가? 바쁜 대중은 릴스에서 10초만 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반복 동작, 힘이 센 안무에만 시선이 향한다.


이는 댄서와 같은 예술가는 물론이고 번역가, 작가, 여러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세세한 포인트,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 담당자와 어떤 부분에서 손발이 맞아야 잘 된다는 것, 고심과 기다림은 타인에게 알빠노라서 도외시되곤 한다. 결국 당사자들은 딥한 이야기를 알아듣는 해당 업종 관계자랑만 고인 물이 되어 이야기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의 진정한 힘과 가능성은 자신을 개방할 때 발휘된다.


그러므로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쿄카가 마음을 열고 출연해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기쁘다. 많은 이가 힙합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춤 외길 인생만 걸어온 쿄카의 춤이 더욱 빛나게 되었으니까. 홀로 일에서 정체된 듯해 웅크리고 있던 내가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용기를 얻은 것은 덤이다.


더워서 힘든 여름이지만 분명 시간은 힙합처럼,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고 있었다.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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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야기보다 춤 이야기가 많지만 내가 번역할 때 힘이 되었으니까 번역 칼럼으로...!


#월우파 #쿄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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