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년 차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다.
얼마 전 고모부께서 번역가가 혼자서 할 만 한지 궁금하다고 질문하셨다. 질문을 받으니 새삼스럽게 궁금해져 내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지난주 끝무렵에는 일본어 게임 번역의 리뷰를 평소보다 일찍 마무리했다. 일반 분야의 번역을 의뢰한 회사에서 답장이 없어, 혹여나 다른 번역가에게 일이 배정되었을 수 있으니 답신을 주시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월요일인 오늘은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며 일반 분야의 번역을 하고, 이 셀프 인터뷰의 글을 썼다. 지난주에는 에세이 공모전에 제출할 에세이 세 편을 인쇄해 우체국에 가서 공모전 접수처로 보냈다.
새로운 게임 번역 업무를 어떻게 진행할지 번역 프로젝트 매니저(번역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조율, 관리하는 사람)와 협의한 마감 기간을 참고해 일주일 스케줄도 짰다. 며칠 전에는 번역가 동료들과 화상에서 만나 지난달까지 어떠한 업무를 진행했는지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일할 때 잘 움직이지 않기에 운동은 필수다. 저녁에는 필라테스를 하러 갔다.
매일 앉아서 일만 하니 주변의 걱정을 산 적도 있지만, 당신은 나의 하루를 보고 정말 혼자서 일한다는 생각이 드는가? 24시간 대면하지 않을 뿐 번역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 가족, 에세이 공모전 동료들, 번역가 동료들과 나는 얇게 혹은 굵게 소통하고 있다.
혼자 일하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삶, 아니,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며 중이병 놀이를 하다가 힘들 때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번역을 하고 있는 나. 나 자신과 주변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와 나를 돕는 주변 사람을 인터뷰해서 번역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항상 번역하고 실적을 기록해 놓듯 나와 다른 사람의 번역 이야기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첫 번째 글은 작년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며 자신을 셀프 인터뷰한 내용이다. 작년 하반기는 연인과의 이별로 10분도 번역에 집중을 못 하는 역대 최초의 이벤트를 겪기도 했다.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서 살아남아 지금도 번역하고 있으니 이 인터뷰를 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
① 번역가 근황
1. 요즘의 나는, 잘 지내고 있나요?
결과적으로 잘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연인과의 이별도 겪었다. 번역 외의 일이 나를 힘들게 하자 번역 업무를 할 때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시간은 흘렀고, 어느 날 우연히 에픽하이의 유튜브에 떠서 봤다. 콘서트 요약 영상에서는 히트곡을 부르는 에픽하이가 등장했다. 내가 십 대 때 에픽하이는 ‘LOVE LOVE LOVE’와 같은 노래로 음원차트 상위권에 자주 올랐다. 영상 속에서 여러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빠져 있는데, 에픽하이의 멤버 투컷이 콘서트 중간에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다.
에픽하이 DJ 투컷: 인생이 한 편의 영화 같다고 말들 많이 하잖아요. 근데 한 편의 영화라면 그 영화가 망하면 어떡하죠? 큰일 나죠.
여러분, 인생을 시즌제 드라마처럼 사십시오. 첫 번째 시즌이 망해도 상관없습니다. 두 번째 시즌 새롭게 시작하면 돼요.
이때 “인생은 시즌제 드라마”라는 투컷의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왜냐하면…
2.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이별을 하고 솔로로 지냈다. 이별 후 초기, 중기, 후기 때 내 번역하던 모습이 달라졌다.
초기: 당장 마감해야 할 번역물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허나 옛 연인이 나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내뱉은 말들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잠이 무척 많은 내가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악몽을 꾸면서 깼다. 사람들 앞에서 청승맞게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 절친한 친구가 지겨워할 정도로 많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번역가로서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마음, 현실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괴로운 마음이 팽팽하게 맞섰다.
중기: 뽀모도로 기법(25분간 집중해서 일을 한 다음 5분간 휴식하는 방식)을 활용해 일할 때 집중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일할 때마다 이별로 안 좋았던 일이 떠오를 땐 여행도 떠났다. 제주도와 서울 여행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다. 인생을 뒤흔드는 일을 겪으면서 한때는 자신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자존감이 높은 주변 지인들을 보며 나 또한 빛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고 돌아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 것. 아픈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해졌다.
후기: 어떤 단어를 써서 번역할지 고민할 때, 그리고 그 답을 떠올렸을 때 쾌감을 느끼면서 더 번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뽀모도로 기법은 여전히 쓰고 있다.
이별을 겪으면서도 항상 생각을 글로 남겨 두었는데 며칠 전 그 글을 우연히 보았다. 작성할 당시에는 힘들어서 쓰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했지만, 지옥에서 경험한 일들을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어려운 순간을 견뎌내고 계속 일해 온 내가 대견했다. “이건 얘가 진짜 너무했네~” 이렇게 말하며 오히려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별일이 아닌 게 된다. 글을 써놓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3. 하루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번역하느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다른 생각 때문에 집중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을 비워낼 수 있는 순간을 좋아한다. 나는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등산을 하면서 고여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 외 정적인 활동으로는 묵주 기도를 바칠 때, 명상할 때 마음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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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는 번역가에게 운동은 정말 중요하다. 바빠서 일어나자마자 앉아서 일만 하니 스마트폰의 걸음 수가 10걸음 이하였던 적도 있다. 주변 번역가를 보면 산책을 하는 경우가 있었고, 일본의 작가이자 번역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체력과 체중 관리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센스 있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힘들다가도 산책하거나 움직이면 그럴싸한 번역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게나 애를 먹이던 문장인데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표현이 떠올라서 놀란 적도 많다. 적당히 움직이면 기분전환이 되고 일할 때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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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즘 나를 가장 흔들리게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그래도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오는 건 무엇인가요?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걱정이고, 마음이 조급할 땐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언제나 긴장한다. 이때마다 기록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올해는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의외로 번역가를 굉장히 훌륭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번역가라고 얘기하면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을 보듯이 오~ 하면서 좋게 봐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사실 일본어가 아주 좋지만 혼자서 골몰하고 일하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지겨울 때도 있다. 번역가는 고독한 직업이었다. 아무래도 번역할 문장에만 파묻혀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고립되고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생겼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흑백 요리사 2>가 떠오른다. 거기에는 4평 외톨이가 출현하는데, 그는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요리를 시작한 셰프다. 약 4년의 세월 동안 거의 혼자 외톨이처럼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지은 닉네임이 ‘4평 외톨이’. 그는 자신의 요리로 생존한 후 “그냥 모든 걸 다 혼자 해 왔는데, 의미가 있었구나, 정말….”이라고 울며 말한다.
그냥 모든 걸 혼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그것이 4평 외톨이에게는 흑백 요리사 출연이었고, 번역가인 나에게는 실적서에 새로운 실적을 한 줄 한 줄 추가하거나 블로그 등 SNS에 사진과 글로 인증하는 일이다.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무언가 이뤄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혼자 일하는 사람이라면 기록을 추천한다.
② 2025년의 나에게 묻다 (회고)
1. 올해의 나는, 자신에게 친절했나요?
앞서 이야기한 힘든 일로 자책할 때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했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터지자 번역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도서관이나 카페 등 집중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서 일했다. 부단히 애써서 일이 많이 들어왔고 번역 마감일은 나를 일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땐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번역료라는 보상이 남았다.
애썼다는 말은 자신을 편하게 만들지는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다. 앞으로는 나를 더 사랑해 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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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며칠 전 번역 마감이 두 개 있던 날, 엄마에게 죄송하지만 오늘은 뵈러 못 간다는 말과 함께 ‘번역가에게 마감은 목숨줄과 같다’라고 했다. 그 정도로 마감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감일 내에 끝내지 못할 것 같으면 작업 시작 전에 미리 담당자와 마감일을 조정하고, 최대한 늦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번역료라는 단어가 위에서 언급되었는데, 일단 번역료를 받으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려면 번역 회사에 번역사로 등록해야 한다. 보통 번역 회사에 등록할 때는 실적서를 보내고 샘플 테스트를 진행한다. 합격하면 단가를 협의하고 회사에 등록하게 된다. 프리랜서는 한 회사와만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일하는 회사를 늘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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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편에서 번역가의 태도, 연말에 꿈꾼 미래에 관하여 글을 써 보겠다.
<소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8년 차 번역가.
일본어, 중국지역통상학,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어 번역가로서 출판, 비즈니스, 영상,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저서로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공저), ⟪New Square 01 일상적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공저), 번역 매거진 ⟪번역하다⟫(공저), 역서로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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